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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게임 심의 제도에 대한 문제점이 불거지기 시작하면서 게임 심의에 대한 여러가지 의견들이 표출되고 있다. 지나치게 획일적이고 수동적인 게임 심의 관련 제도의 문제점을 성토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사실 게임 심의 문제에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는 정책 입안자들-혹은 게임을 바라보는 일반-의 인식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른바 ’바다 이야기 사태’가 발생하기 훨씬 이전부터 ’게임 = 나쁜 것’이라는 기본 관념은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있으며, 이러한 인식은 국내의 모든 게임 산업과 관련한 정책 뿐만 아니라, 소비 환경에 있어서도 과거부터 지금까지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게임이 마치 모든 범죄의 근원이 되는 것 처럼 호도하는 행태는 비단 국내의 문제만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몇몇 주에서 시행하는 강도 높은 게임 관련 규제 법안들이 발의되고 있으며, EU 소속의 국가들 역시 게임에 대한 보수적인 입장을 공공연히 표명하고 있다. 분명히 그들이 우려하는 것 처럼 ’모든 게임’들이 사용자에게 순기능을 한다고 할 수는 없다. 분명히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게임들이 게임 판매 순위의 탑에 올라가 있는 경우도 존재하며,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는 게임들이 출현하는 것도 사실이다-물론 그에 비하여 순수한 재미를 추구하고, 순기능 역할을 하는 게임들도 그 만큼 존재한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또한 이러한 게임들이 사용자에게 암묵적, 혹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때문에 사회적인 문제가 될 게임들은 ’제제’가 필요하며, 악의적인 목적으로 이러한 게임들을 개발/유통 한 관련자에 대해서도 엄격한 제제를 가해야 하며 이에 대한 이견은 없다.

심의 제도에 대한 광신

문제는 ’악의적 게임’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하는데 있어 어떠한 방법을 선택하느냐에 달려있다. 현재의 대한민국의 게임 심의 제도는 사실상 ’심의 만능주의’라고 칭해도 될 정도로, 심의 제도에 대한 광신이 극에 달해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심의 제도가 존재함으로써 ’악의적 게임’들의 개발/유통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정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와는 달리 법을 우회하여 사행성 게임을 서비스하는 업자는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며, 이런 업자들에 대해 현재의 게임 심의 제도는 사실상 무력하다. 게다가 사실 게임 심의 관련 제도는 전국민적 우려 사항인 ’사행성 게임’과는 전혀 무관하다1

게임 심의 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에 사행성 게임이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는 어디까지나 환상에 불과하다. 악의적인 목적을 가진 사람에게 있어서 법을 지켜야 할 이유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윤리적 기술적으로 손쉽게 법을 회피하거 나 불법을 저지른다. 오히려 지금과 같은-’모든’ 게임을 대상으로 ’관리’를 하겠다는 발상을 가진-게임 심의 제도는 엉뚱하게도 대다수의 게임 개발자와 아마추어 게임 개발자, 혹은 게임 개발 지망생들을 잘못된 제도의 피해자로 만들고 있을 뿐이다.

게임 심의를 통하여 악의적 게임을 막겠다는 ‘무리한’ 발상보다는 악의적 게임에 대한 정확한 가이드 라인을 가지고 적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법기관이 이를 모니터링 하고 단속 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고 실현 가능한 방법이다. 게임 심의 제도는 범죄를 예방하고 단속하는 제도가 아니며, 제도의 특성 상 그러한 역할을 할 수도 없다. 그런데 그런 역할을 심의에 떠넘겨버림으로써 지금의 대혼란의 원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심의의 역할 변화

현재 게임 심의는 ’모든 게임에 대한 의무’ 사항으로 되어 있으며, 이를 어길 경우 형사상의 책임을 물게 되어있다. ’악의적 게임’을 제작하면 처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심의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는 것이다. 생사람을 잡는 제도라는 비판이 나올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혹자는 이러한 제도가 있기 때문에 그나마 사행성 게임이 억제되고 있다고 생각 할 수 있지만, 이는 마치 사형제도가 존재함으로써 강력 범죄가 현상을 유지하고 있다는 논리와 같다. 범죄율은 처벌 조항의 유무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건전성에 따른다. 심의가 의무가 아닌 선택이 된다고 하더라도 사행성 게임이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은 기우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게임 심의 제도가 완전히 사라져야 할 암적인 제도인가? 지금의 심의 제도는 그 역할을 완전히 바꿔야만 한다. 통제-처벌을 위한 심의 제도가 아닌 합리적인 소비자의 선택을 유도하기 위한 효과적인 ’정보 전달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게임 심의 제도가 실질적으로 필요한 대상은 일반적인 성인 게이머가 아닌, 게임을 즐기는 자녀를 둔 부모들이다. 때문에 심의 제도의 최우선 과제는 ’자녀들이 즐기는 게임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부모에게 알릴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현재도 게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심의 제도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거나, 무관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의 기구가 해야 할 일 중 게임을 심의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게임 심의 제도 및 그 내용에 대하여 ’실질적인 수요층인’ 부모들에게 적극적으로 안내하고, 이에 대한 관심을 유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게임 심의를 지속해 나가고, 시장에서 판매되는 게임들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전달함으로써, 소비자들이 올바른 게임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게임 심의 제도의 본질적인 역할이다-하지만, 현재의 게임 심의 제도는 이러한 본질에서 벗어나 그 목적과 다르게 작동 하고 있다.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때

악의적 게임에 대한 통제와 처벌은 분명히 필요하며, 이는 심의 제도가 아닌 사법 기관의 판단으로 제제가 이루어져야 되는 부분이다. 심의 제도는 이러한 통제 및 처벌까지 아우를 수 있는 제도가 아니며, 애시당초 그 목적 자체가 행정 편의주의적인 발상과 맞물려 왜곡되었다. 때문에 심의 제도를 통한 정보 전달과 소비자 권익 보호라는 가치는 현재의 게임 심의 제도와 관련한 논의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게임 심의에 대한 만능주의를 버려야 한다.

대한민국은 악의적 게임에 대처하기 위해 잘못된 도구를 들고 있다.


  1.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륭 제1장, 제 2조, 1항에 의하면 사행성 게임물은 게임물에 해당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