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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건이 그렇듯 시작은 평범했다

2022년 2월이 되기 전, 구글 플레이에 등록되어 있는 두 개의 게임 앱(올해의 게임 시뮬레이터 페이퍼 스타 파이터)에 대한 데이터 보안 섹션을 위한 양식을 입력해달라는 통보를 메일로 받았다. 2022년 4월까지 승인을 받지 않으면 신규 앱 제출 또는 업데이트가 거부된다는 경고와 함께.

어차피 대수로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2월이 되기 전에 느긋하게 제출을 마치고 난 이후 결과 통보를 기다리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메일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예상한 메일 제목과는 다른 제목의 메일이 수신되었다.

조치 필요: 앱이 Google Play 정책을 준수하지 않음(올해의 게임 시뮬레이터)

사용자 평점, 리뷰, 설치 수 정책 관련 위반.

Game of the Year Simulator title

올해의 게임 시뮬레이터가 구글 플레이에 최초 등록되었던 건 2020년 3월 경. 2년이 다 되도록 문제 없이 걸려있던 게임이 갑자기 정책 위반이라는 통보를 받은 것에 대해 어처구니 없던 건 당연지사. 애초에 앱 자체를 바꾸거나 한 것이 1도 없었기 때문에 위반했다는 정책 내용을 찬찬히 살펴 보았다.

개발자는 Google Play에서 앱의 순위를 조작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는 허위 또는 인센티브 제공 설치, 리뷰, 평점 등 부당한 수단을 동원하여 제품 평점, 리뷰 또는 설치 수를 조작하는 행위가 포함됩니다. 인센티브 제공 설치, 리뷰, 평점에는 가격이나 기타 프로모션 정보가 표시된 텍스트 또는 이미지를 앱 제목, 아이콘, 개발자 이름에 사용하는 행위가 포함됩니다. 

개발자는 스토어 실적이나 순위가 표시된 텍스트 또는 이미지를 추가하거나 앱 제목, 아이콘 또는 개발자 이름에 기존 Play 프로그램과의 관련성을 암시해서는 안 됩니다.

사용자 평점, 리뷰, 설치 수 정책 관련 – Google Play 정책 설명 중

구글과 애플의 앱 검수 시스템의 악명(구체적으로 뭐가 문제인지 알려주지 않는다)는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내용에서 알아서 문제를 찾아야 하는 건 각오하고 있었다. 대충 내용을 보아하니 앱 제목의 “올해의 게임”이 해당 정책 위반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었다.

“아 진짜, 이 찐따 같은 구글 AI.”

이 때 까지만 해도, 구글 AI가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한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때문에 바로 간단히 해당 결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메일(해당 제목은 컨텐츠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결정되었고 기계적인 판단이 아닌 맥락의 관점에서 재검토 해달라는)을 보냈다. 그래도 멍청한 AI 보다는 사람이라면 더 나은 판단을 하지 않을까 하고.

설 연휴가 껴있는데다, 답변이 한 달 넘어서나 올 것이라 생각하고 신속 처리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놀랍게도 답변 메일이 설날 당일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내용은…

개발자는 스토어 실적이나 순위가 표시된 텍스트 또는 이미지를 추가하거나 앱 제목, 아이콘 또는 개발자 이름에 기존 Google Play 프로그램과의 관련성을 암시해서는 안 됩니다.사용자 평점, 리뷰, 설치 수 정책 페이지에서 자세한 내용과 일반적인 위반 사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앱 제목이 스토어 실적 및 순위가 표시된 이미지 또는 텍스트(예: ‘올해의 게임’ 등)를 표시합니다.

답변 메일 중

이 답변 메일을 보고 기쁨과 슬픔이 교차했는데, 기쁨은 문제가 “올해의 게임”이란 단어 때문이란 추측이 정확했다는 것 때문이었고, 슬픔은 사람이나 AI 나 둘 다 기계적으로 일 처리 할 거면 미래의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같은 의문 때문이었다. 친절하게도 답변을 보낸 담당자의 실명을 보고 있으니 처음에는 화가 나다가, 결국 애잔한 기분만 남은 체 메일을 닫았다.

그래도 남은 인류애와 인간의 존엄성에 기대를 걸고 좀 더 자세한 설명과 함께 재검토를 바라는 메일을 다시 보냈으나 답변은,

“안타깝지만, 이전 메일에서 제공해드린 정보 이외에 더 제공해 드릴 수 있는 정보가 없습니다.”

였다.

그냥 AI의 지배를 받자. 어휴.

기업의 사적 검열

얼핏 구글이나 애플이 앱 스토어 운영 정책을 세우고 이를 적용하는 것은 이른바 “건전한 생태계 유지”를 위해 필요 불가결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을 앞세운 사전 / 사후 심의와 검열은 사실 종이 한장 차이에 불과하다. 국내의 경우 문화 예술 컨텐츠에 대한 사전 심의는 수십 년에 걸쳐 국가 통제 수단이자 검열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비디오 게임의 경우에도 최근에 와서야 민간 심의의 틀을 일부나마 겨우 갖췄을 뿐이다.

오히려 비디오 게임 산업의 경우, 이러한 국가에 의한 심의 제도가 민간에 이양되면서 오히려 기업의 사적 검열 권한을 강화시킨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대단히 민감한 법적 영역의 문제 뿐만 아니라, 기업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많기 때문에 내가 겪은 사례와 같이 기계적이고 단호한 정책 적용에 대해 일부 그 이유를 수긍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계적인 정책 적용이 아쉬운 부분은 이런 것이다. 국가에 의한 사전 심의나 검열이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그것을 향유하는 소비자(게임의 경우 주로 청소년 층)를 기만 당하기 쉬운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계급으로 두고 이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는 역할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존재한다. 소비자층이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라면 반대로 사전 심의나 검열을 이끄는 주체도 충분히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건 인정하지 못한다.

일전의 비디오 게임 사전 심의의 논란에서도 꾸준히 주장해왔듯, 최종적인 선택은 소비자에게 맡기되, 문제가 될 여지가 있는 부분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제공하고, 이를 활용하는 방법을 알리는 (고통스럽게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드는) 선택지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선택을 하는 국가 기관이나 기업은 아직까지 나타나진 않고 있는 듯 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사적 검열은 불필요한가?

기업의 사적 검열은 표현의 자유를 위해 불필요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나, 검증되지 않은 불필요한 정보가 대량으로 유통될 수 있는 현재의 IT 미디어 환경은, 과연 무제한적인 표현의 자유가 계속적으로 옹호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불러일으킨다. 작금의 코로나 사태에서 정치적인 목적으로 비과학적인 정보를 지속적으로 유포되는 정보나, 기본적인 인권에 대해 부정하거나, 다양성을 혐오하는 컨텐츠에 대해 대부분의 글로벌 테크 기업들은 해당 컨텐츠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거나, 차단하는 적극적인 정책을 도입하고 있는 중이다(하지만 이 마저도 정치적인 잣대에 의해 고무줄처럼 적용되는 경우가 허다해 하루가 멀다하고 이슈가 터지곤 한다).

이는 정부나 국회의 입법에서도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인종, 성별, 소수자에 대한 혐오 범죄가 발생하고 나면 이를 부추긴 컨텐츠에 대한 사적 검열을 컨텐츠 제공자에게 책임지우는 법안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통과되고 있다. 이쯤 오면 이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은 부재한 상태에서 “어쨌든 문제가 있으니 니들이 알아서 좀 처리해봐”로 보이기만 한다.

나 역시도 어떠한 꼴보기 싫은 컨텐츠가 차단 당하는 데에는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이니 무작정 사적 검열에 대해 반대를 하기도 애매하다. 내로남불이 따로 없다. 올해의 게임이 반려 된 것에 대해 어처구니 없어 화를 내다가도 결국 머슥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려 당한 업데이트 대해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는 아직 방침을 정하진 않았다. 구글의 말도 안되는 정책 적용을 따르자니 검열에 굴복하는 기분이고, 그냥 내버려두자니 두고두고 신경 쓰일 것 같다. 그냥 스토어에서 내려버리는 것도 뭔가 지는 느낌이라 싫고, 이래저래 나에게는 검열의 효용 가치와 표현의 자유 문제 만큼이나 선택이 어려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