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s: 295
0 0
Read Time:3 Minute, 57 Second

넋두리부터 시작하겠습니다

2008년 1월 31일부로 다시 민간인으로 복귀하기 직전까지 ‘대체 뭘 해먹고 살아야 하나’라는 고민을 나름대로는 꽤 진지하게 했었더란다. 물론 여태 군대에서 익힌 여러 스킬들-별로 대단한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공군 중위로 전역했다-을 기반으로 일반 회사에 취직해서 평범하게 사는 것에 대한 유혹도 사실 아직까지 뿌리치진 못했다. 외모와는 다르게 진득하게 먹어버린 나이 탓도 있고, 3~4년 사이에 환경이 너무 바뀐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내 자신이 변했다라는 점이다. 어릴적 미친듯이 빠져들었던 게임은 이제는 단순하게 내 자신의 잠깐의 시간에 즐기는 ‘여가의 일부’로 자리잡은지 오래다-어떻게 보면 이제와서 본연의 목적에 도착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게임을 만들고 싶다. 그냥 평범한 월급쟁이로 월급 받으면서 사는 것 역시 안정되게 지속시킬 자신이 있고, 게임 만들어 버는 것 보다 더 많이 벌 자신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여태 살아온 인생의 절반-한 14년 정도?-를 부정하는 것 같아서 내 스스로에게 짜증이 난다. 차라리 지금보다는 사업을 하겠다고 무작정 덤벼들었던 철없던 시절때가 더 당당했었다고 생각이 된다. 아직 30대도 몇년 남았는데 뭐가 무서워서 도망칠꺼란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게임 업계 취업을 준비하면서 아직까지 별 다른 고난 같은걸 겪어본건 아니지만, 여기저기 꾸준히 자리를 잡아간 친구/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현실은 시궁창’이란 표현을 자주 듣게 된다. 더군다다 기획 파트는 여전히 막장이라는 이야기도 종종 들었다. 구인자와 구직자가 동시에 많은 이상한 노동 시장 구조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 시스템에 종속되어 있다보니 문제를 어디서 부터 풀어야 할지도 막막하기만 하다-게다가 각 회사별로 요구하는 스킬이 천차만별이니 어느 기준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신세 한탄이나 하자고 쓰는 글이 아니니 일단 이 정도로 할까 한다.

나는 이런 게임을 만들고 싶습니다

나는 무언가 대단한 것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이 우주에 살고 있는 모든 게임 개발자가 생각하는 단순한 목적-‘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을 뿐이다. 그것이 MMO가 되었든, XBOX360이 되었든 상관이 없다. 내가 만들어서 즐겁고, 그것을 하면서 즐거운 게임, 거기에 더하여 남들도 재밌다고 느낄만한 그런 게임.

하지만 이런 어릴적 동화 같은 자기 만족적인 목표는, 기업 활동을 하는 게임 제작 ‘업체’에서는 분명 100% 곤란하다. 적어도 게임 제작과 배급으로 기업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이윤’을 추구해야 되는것은 당연하고 되도록이면 최대의 이윤을 남겨야 하는게 기업 활동의 목적이라는 것은 경영학 원론 첫 페이지에 나오는 가장 중요한 명제이다. 이런 게임을 만들 바에는 그냥 혼자 프로젝트를 진행하던가, 그게 좀 힘들다면 지인들과 함께 게임 제작 팀을 운영하는게 여러 주주들이 돈을 모아 ‘투자’한 게임 업체에 손해를 덜 끼치는 행동이다.

최소한 게임 업체에서 게임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목표를 수정해야 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궁극적인 목표가 수정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구체적일 필요는 분명히 있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의 명제는 여기서 다음과 같이 정의 된다. “투자 대비 이익이 긍정적으로 나올 수 있을 만큼 제작 및 운영 효율이 좋으면서, 소비자들에게도 투자 대비 이익-만족 또는 재미-을 줄 수 있는 게임”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것은 생각하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의 의미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재미라고 하는 모호한 단어 개념부터가 사실 문제라고 밖에 볼 수 없는데, 사람들이 재미를 느끼는 경우는 각 개성만큼이나 판이하게 틀리다-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살인을 저지르는데 재미를 느끼는 인간도 분명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에서 재미를 추구하는데 장르나 플랫폼 같은것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 할 수는 없다. 장르나 플랫폼은 어디까지나 시장을 구분하기 위해 편의상 나눠진 것일 뿐, 이 장르의 게임이 저 장르의 게임 보다 재미있다. 라던가, 이 콘솔의 게임이 MMO 보다 재미있다 등의 이야기는 애초에 성립 불가능하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게임이 더 우수한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힘들다. 다만, 어떠한 하나의 게임이 최대한 다수의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게임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해 본다면

 1. 게임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일 것
 2. 최대한 간단하고 직감적으로 만들어 진입 장벽을 최대한 낮출 것
 3. 쾌적한 게임 플레이 시스템을 고안하여 적용할 것

이다. 게임의 완성도는 게임 기획에서의 시스템 디자인의 치밀함, 게임 QA에서의 불량률 방지를 통해서 확보하고, 간단과 직감의 문제 역시 게임 UI 디자인에서 무엇을 우선시하는가 하는 목적의 구체화를 통해서 달성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쾌적한 게임 플레이 시스템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게임에서의 모든 룰이 게임 참여자 전체에게 공평하게 적용함으로써 이룰 수 있다고 본다.

게임을 다수에게 재미있게 만들면 인기는 자연스럽게 붙게 되고, 소비자 역시 그에 비례하여 증가하게 되겠지만, 게임 제작을 하는데 있어서 무조건 재미만을 추구 할 수는 없다. 아이디어는 정말 괜찮은데 구현이 불가능한 기술적인 난맥상이 존재한다던가, 간단한 플래쉬 게임을 만들 만한 인원 밖에 되지 않는데 MMORPG를 제작한다던가 하는 팀의 현실에 대한 고려가 없다면 아무리 재미있는 아이디어도 쓰레기에 불과하게 된다.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는 개인의 생각이나 감이 아닌, 과학적인 근거로 팀/회사/게임 시장의 현재 상황을 항상 정확하게 파악하려 노력해야 한다.

게임을 만들고 싶습니다

사실 이 글은 개인적인 입장 정리 이상/이하도 아니다. 어떻게 하면 재미있으면서 기업 입장에서도 성공한 게임을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지만, 그간 게임 업계를 바라보면서, 나름 분석하며 공부하면서 가지게 된 생각들이 태반이다.

(나름대로) 재미있는 게임들은 많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재미라는 팩터가 정형화 되기에는 게임 시장은 너무 커졌기 때문에, 이를 파악하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게임을 제작하면 힘들어지는 환경이 된 것도 사실이라 생각한다.

이리저리 말을 돌렸지만, 잘나가는 게임 하나 만들고 싶은게 게임 업체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된 꿈이고, 위의 내용들도 그 목적에 따라 정리된 사항이다. 앞으로 얼마나 이 일을 경험하게 될련지는 모르지만, 당분간은 게임 제작의 나름의 기본 지표다.

Previous post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서 ヱヴァンゲリヲン新劇場版:序
Next post 게임의 완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