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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발: Kojima Productions
  • 리뷰 플랫폼: Play Station 4
  • 발매년도: 2019년
  • 장르: 시네마틱 액션 어드벤쳐

메탈기어의 아버지, 시네마틱 컷 신 성애자(…) 코지마 히데오가 몸담았던 회사를 뛰쳐나와 만드는 게임은 세간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다. 나의 경우에는 한 때 그의 게임에 열광한 적도 있었지만, 메탈 기어 솔리드 3 이후 부터는 점차 열기가 식어갔는데, 그의 말 많은 스타일에 지친 탓이 매우 컸다.

데스 스트랜딩 런칭 트레일러

때문에 그의 신작 소식이 나왔을 때, 거의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무관심 속에 어쩌다 본 티저 영상은 심지어 일부러 베일에 가려놓은 게 많다 보니 “대체 뭘 만들고 싶은거야?” 같은 생각만 짧게 지나가고 잊혀지곤 했다.

이거 쿠팡맨 게임임.

SNS 상 유저들의 평 요약.

게임이 발매 된 직후 유저들의 평과 플레이 영상이 올라온 이후에야 내 관심이 높아진 건 저 한 줄 평의 임팩트가 너무도 컸기 때문이다. “아니, 미친, 뭐? 그런 그로테스크한 영상만 흘리다가 나온 게임이 유로 트럭 시뮬레이터 2라고?” 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으니깐. 주저하지 않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매를 하고 게임이 오기를 기다렸다. 다음날, 배송기사를 통해 게임은 안전하게 배송되어 왔다.

사용자 경험으로 스토리 전달하기

다른 매체와 달리 게임은 사용자(플레이어)의 경험 자체가 하나의 “스토리”가 된다는 장점이 있다. 화려한 시네마틱 컷 신을 이용한 게임들이 대부분은 기존 매체에서 성공한 스토리 텔링 방식을 가져오는데 집중한 나머지, 스토리와 플레이 경험을 극단적으로 나누는 경향이 매우 컸다. 이건 플레이어에게 스토리를 전달하기 가장 손쉬운 방법이긴 했지만, 스토리와 게임 플레이가 따로 놀거나 극단적인 경우 사용자가 스토리를 무시하는 상황을 만든다 – 그리고 이 게임의 프로듀서인 코지마 히데오는 전작들에서 스킵 안되면서 무지하게 긴 스토리 컷 신으로 악명이 높았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란 걸,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걸 ‘데스 스트랜딩’을 통해서 느끼길 바란다.

코지마 히데오, 방한 인터뷰 내용 중, 2019. 11. 30.

멸망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인류. 초현실적이고 코스믹 호러 풍의 재난. 척박한 길을 개척해가며 거점과 거점 사이의 물류를 책임지는 배송 기사 “샘 포터 브리지스 Sam Porter Bridges“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프로듀서의 인터뷰 내용과 결을 같이한다. 그리고 전매 특허인 장황한 설명이 이어지는 컷 신은 게임 전반을 차지한다.

하지만 게임의 초반을 지나고 나면, 예전 코지마의 작품들과 다른 분위기를 느낀다.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카이랄 네트워크라는 설정을 통해 만들어진 비동기 멀티플레이 시스템. 그가 말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느낌”은 장황한 컷 신이 아니라 이 시스템에서 확실히 알 수 있다.

데스 스트랜딩의 세계는 이미 황폐화 되어 거점 간 이동이 매우 어렵다. 실제 플레이를 해보면, 새로운 지역으로의 이동은 매우 모험적인 일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사용자가 중간 거점을 한 번 뚫어놓으면 그 거점 주변의 지역은 카이랄 네트워크라는 가상 네트워크에 연결 된다. 이 때 부터 그 지역에는 실제 다른 사용자들이 직접 만든 다양한 건설물을 이용할 수 있다. 사용자들이 하나씩 세워 놓은 작은 표지판 부터, 서로 물자를 모아 만든 물류 보관소, 쉼터, 국도, 피난소 등은 이 극단적이고 척박한 세상을 홀로 여행하는 부담을 순식간에 경감시킨다.

마찬가지로 내가 만든 건설물 역시 다른 사용자들이 이용하게 된다. 이런 시설들을 이용할 때 마다 사용자들에게 “좋아요(페이스북의 그 따봉 버튼 맞다)”를 보내게 되는데, 이렇게 받은 “좋아요”는 샘 포터 브리지스의 등급 평가(쉽게 말해 레벨 업)에 사용 된다.

극단적인 고립, 그리고 타인과 연결된 안도감

게임의 세계는 매우 극단적이다. 막막한 세상에 혼자 떨어져 있고 주위의 환경은 모두 플레이어를 적대한다. 버거운 짐을 들고 황량한 평야를 달리고 있다보면 이런 고독감도 또 없다.

하지만 카이랄 네트워크에 의해 연결된 세계는 비록 혼자 있더라도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준다. 전기차의 베터리가 다 될 때 쯤 나타나는 누군가 설치한 충전소, 위험을 감수하고 건너야 하는 강물에 누군가 건설한 다리, 특별한 아이템의 위치를 알려주는 표지판 등을 볼 때 마다 나 혼자 애쓰는 세계는 아니구나라는 확신과 함께 묘한 안도감을 준다.

그래서인지 게임의 전반적인 난이도는 어려운 편이 아니다. 당신이 가야 할 길이 누군가 이미 지나갔던 길이었던 만큼 그 시점에 필요한 것들이 대부분 구비 되어 있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을 위해 표지판을 열심히 세우고, 국도를 복구하고, 각종 시설을 건설 했다. 그걸 해야겠다는 의무감에서 시작하는 일은 아니다. “일단 나에게도 필요하고, 남들도 필요 할테니까” 하는 일이다.

여담으로, 이게 꼭 좋은 경험이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데스 스트랜딩의 최신 패치에서는 이른바 길막을 하고 있는 차량을 없애버리는 기능이 추가 되었다. 다른 사용자의 차량 역시 공유를 할 수 있고 때문에 필드 여기저기에 버려진(?) 차량이 많은데 이런 차량이 배송 루트를 막아 게임을 진행하지 못하는 경우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근사한 게임 플레이, 하지만… 코지마식 엔딩

혼자사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플레이로 풀어낸 데스 스트랜딩은 매우 근사한 게임이었고, 때문에 엔딩에 대한 기대도 어느정도 있었다. 사실 나는 “주인공은 악당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고 바로 끝내도 감동의 박수를 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불행이도 그런 일은 없었다.

최종 보스 전투를 끝내고 난 뒤, 이어지는 두 시간여의 컷 신과 약간의 인터랙티브는 그 앞에 쌓아둔 게임의 호감을 와장창 깨버렸다. 최종전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고? 그간 앞의 이야기 전개에서 흘려뒀던 이른바 떡밥 회수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이 딱 이런 느낌이다.

자, 나는 방금 막 사악한 보스를 물리치고, 세상을 구했어. 만세!

환호하다 정신을 차렸는데 나 혼자 있는 텅 빈 강의실에서 왠 강의가 시작되네? 

무척 길었지만 나는 참았지. 그리고 강의가 끝났어. 아니 끝난 줄 알았는데, 또 다른 교수가 들어와서 이야기 하는거지.

"아, 자네, 졸업하려면 내 수업도 마저 이수해야 하네. 거기 앉아." 

그래도 2019년 최고의 인디 게임

농담이나 비아냥이 아니다. 데스 스트랜딩은 올해(2019년) 최고의 인디 게임이다. 전 회사로 부터 석연치 않은 퇴사를 한 뒤 스스로 만든 회사에서 남들은 개념조차 이해하기 힘든1 게임을 우직하게 만들어 완성시켰다는 것 만으로도 이 게임은 그런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이런 게임의 엔딩 컷 신이 두 시간이 가까운게 뭐 대수랴.


  1. “게임성에 대해서도 이해 못 하는 것도 있었다. 물건을 배달하고 이동하는 걸 게임성으로 하는 게 전례가 없다 보니 팀원들도 많이 걱정했다.” – 코지마 히데오 방한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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