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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 : Bioware/Black Isle Studio
  • 유통 : Interplay Korea/Abbyss Interactive(한국)
  • 장르 : 롤플레잉 게임

충동적인 구매에는 물리적인 충격이 엄습해오기 마련이다. 아마도 코만도스 2를 막 끝내기 직전의 추석 시즌이었으리라. 플레인스케이프 : 토먼트 이후로 급작스레 AD&D 기반 롤플레잉 게임에 관심을 두고 있었던 나는 민족 대 명절이라는 추석 시즌을 맞이하여 판매하는 발더스 게이트 2 합본(구성은 오리지널과 확장팩)을 덜컥 구입하고 만 것이었다. 시중 가격 보다는 싼 가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은행 송금을 하던 손은 수전증 걸린 사람 보다도 더 안쓰러울 정도로 떨렸으니, 이만저만한 충격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지금에서 이야기이지만, 나름대로의 보상은 충분히 받았다고 생각한다. 오리지널인 쉐도우 오브 앰의 이야기를 모두 종료하기까지 들인 시간은 별로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고 있으며, 너무 재미있어서 뒤로 발랑 넘어져 코가 깨질 정도는 아니지만, 정말 오랜만에 질리지도 않고 오랫동안 할 수 있는 게임을 만난 것 같아서 내심 기뻤달까? 꽤 진지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라고 일단 서론을 꺼내야 할 것 같다.

롤플레잉의 중요 요소라고 한다면, 성장 시스템, 전투 시스템, 스토리라고 일차 분류를 해 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일본식 RPG와 미국식 RPG라는 분류는 이런 롤플레잉의 중요 요소를 게이머들에게 전달하는가 하는 부분의 문제로 귀결되곤 한다. 캐릭터의 다양한 성장 루트의 제공, 다양한 방법의 전투 해결법 제시, 자유도 높은 스토리는 그간 일본식 RPG에서는 분명 쫓아갈 수 없는 부분이었고, 역시 직선적이고 명확한 스토리와 전투 시스템의 간결하고 액션적인 면은 미국식 RPG가 감히 도전 할 수 없는 일종의 성역이었으리라. 발더스 게이트 2는 제작사가 미국에 위치한 만큼 이러한 자기 색에 대단히 충실한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대부분의 시스템이야 유명한 TRPG 시스템인 AD&D의 기본 룰에 충실하고 있고, 스토리 역시 AD&D의 공식 세계관인 포가튼 랠름(Forgotten Realm)에 기본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원래 TRPG라는 것 자체가 자유스러운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게임의 이야기는 전작인 1편에서 이어지고 있다. 살인과 죽음, 광기의 신인 바알(Bhaal)의 자손인 주인공은, 역시 여러 바알의 자손들 중 하나 인 사레복의 음모를 분쇄하고 유유자적한 모험 생활을 즐기던 도중, 이름 모를 집단에 동료들과 함께 납치를 당하면서 이야기가 시작 된다. 존 이레니쿠스라고 하는 광기어린 마법사는 주인공과 그의 동료들을 대상으로 모종의 실험을 실행하던 도중 정체 불명의 집단으로 부터 실험실을 습격 당하게 되고, 혼란한 와중에 탈출을 감행한 일행은 존 이레니쿠스의 음모를 분쇄하기 위해서 새로운 국가인 앰(Amn)을 여행하게 되는 것이다.

나와 같이 발더스 게이트의 1편을 완전히 마무리 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아에 플레이를 해보지 못한 사람의 경우, 1편에서 이어지는 스토리 라인의 특성 때문에 약간의 정신적인 저항이 발생 할 수도 있다. 아마도 스토리 중심의 게임이었다면 이것은 게임을 즐기는데 있어서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으로 남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발더스 게이트 2에 있어서는 이런 문제는 일단 접고 들어가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이런 것이 미국식 RPG 나아가 TRPG의 매력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포용력에 박수를 쳐야 할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은근한 매력이 있다는 건 이런 걸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마음씨가 느껴진다고 한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려나?

시스템 디자인이 튼튼한 게임은 스토리를 가리지 않는다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나만의 정의가 있다. 이러한 정의의 극한을 보여준 게임이라고 하면 당연 퀘이크 시리즈를 그 첫 선에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한 시스템만을 중시하여 스토리가 빠져버린 이 반쪽짜리 게임(물론 2편에서는 스토리가 추가 되긴 했지만, 결국 3편에서는 다시 빠져버렸다)은 이런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3D 액션 게임의 대표작으로써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퀘이크 시리즈야 액션 게임이라는 장르적 특징 때문에 이러한 정의가 무리 없이 잘 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발더스 게이트 2 역시 시스템 디자인이라는 기본 위에 세워진 게임 스토리가 어떻게 조화되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게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발더스 게이트 2의 스토리가 엉망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야기 하고 싶은것은 시스템의 우수성이랄까? 검증된 시스템(AD&D)의 도입이 게임을 성공 사례로 이끈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닌 듯 싶다. 무턱대고 자신의 게임에 맞는 유일한 시스템을 디자인 하기 위해 골머리를 썩혀 놓고는,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 버리는 게임 디자이너라면 더더욱.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의 성공 덕분일까. 최근에 있어서 다시금 AD&D의 라이센스를 취득한 게임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SSI의 최신작인 풀 오브 라디언스 2의 같은 경우, 예전에 AD&D 룰 기반의 게임을 많이 만들어본 화려한 명성의 제작사 답게 인기를 모으고 있는 모양이다(SSI에서 만든 AD&D 라이센스의 대표적 게임은 주시자의 눈(Eye of the Beholder) 시리즈이다).

이제는 마지막 모험(확장팩)만을 남겨두고 있다. 바알의 자식의 모험은 앞으로 도달해야 할 엄청난 경험치로써 나를 유혹하고 있다. Lv. 40. 예전 TRPG를 할 때 D&D 캐릭터 최종 도달 Lv. 는 15 레벨 마법사였다. 현재의 내 발더 캐릭터는 Lv. 21 전사. 이른바 보통의 인간이 도달 할 수 있다고 하는(설정상) 레벨을 뛰어 넘은지는 이미 오래인 것이다. Lv 40 정도면 게임상의 신의 등급이나 이모탈의 경지라고 하는데… 상상속에서나마 신이나 절대자가 되고 싶은 인간의 욕구란, 단순한 숫자 쌓기 놀음에 불과한건 아닌가 하는 기묘한 생각이 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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