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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의 4월은 지금 다시 돌이켜봐도 매우 잔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월 당시는 오히려 아무렇지 않았는데, 미안함, 아쉬움, 분노, 좌절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과 함께 안도가 뒤섞여 있던 탓이 클 테다. 물론 비율 같은 건 무시하고 뒤섞인 감정들이 정신적인 측면에 도움이 되었는가 하면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다행이, 여러 도움으로 지금은 2년전의 봄에 비하면 상황은 많이 안정되었지만, 그때의 후유증은 아직 남아있다.

파이드 파이퍼스에서의 경험은 어쨌든 인생의 1/4를 차지할 만큼 내 인생에 큼지막한 궤적을 남겼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에는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던 여러 경험, 그리고 잘못을 나중에 정신 차리고 정산하게 되니 후회보다는 앞으로 취해야 할 내 스스로의 자세에 대해 명확하게 확신이 서기 시작했단 것이다. 이런 득도(?)가 그 잔인했던 봄 이전에 있었다면 싶을 정도로 파이드 파이퍼스(와 이후 네오위즈의 동료들은)는 분명 나를 성장 시켰음은 분명하다. 내가 능력이 너무 모자라 그것을 너무 늦게 받아들였을 뿐.

2019년 4월부터 2020년 6월까지 나는 마치 겉과 속이 다른 것처럼 행동했던 것 같다. 겉으로는 자신감 있게 이것 저것 떠들었으나, 그 근본에는 ‘내 이야기가 잘못되었으면 어떻게 하지?’ 같은 공포가 심연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한동안 심연의 공포는, 인지 저 편에 넘겨두고 바라보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스스로 발목 잡는 결정을 하는 건 결국 인지의 문 저편에 가둬 둔 공포가 작게 열린 틈 사이로 손을 뻗어올 때였다.

직장 생활을 다시 시작하고 개인, 가정의 안정을 찾기 시작하면서 부정적인 생각은 많이 내려놓게 되었다. 자신감 있던 척 하던 수다는 줄었지만, 오히려 반대로 심연이 빠르게 매워졌다. 그저 기분 탓은 아니다. 다행이도.

지금의 직장을 구할 때, 게임 제작에 직접적인 참여를 하는 포지션(게임 디자인, PD, 디렉터 같은)에 지원은 일부러 회피했다. 처음에는 심연이 또 한 번 손을 뻗어 발목을 잡았지만, 지금은 그것과 별개로 팀 작업 프로젝트에서 제작 참여 포지션을 맡고 싶은 생각이 당분간 없다.

항상 이 블로그를 통해 말해왔지만, 게임을 만든다는 것은 남들에게 경험시켜 주고자 하는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일이다.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기 전까지는 함부로 깝치지(?) 말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파이드 파이퍼스의 경험에서 생긴 부작용 Side Effect 이다. 낙서는 낙서장에, 게임 개발을 낙서장 삼았을 때 – 그리고 그게 팀 단위로 움직이는 일이 되었을 때의 참혹한 결과를 만든다는 게 나름 신조가 되었다.

게임 제작을 하고 싶지 않다는 건 아니다. 올해의 게임 시뮬레이터는 내가 하고 싶은, 그리고 남들에게 경험시켜주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게임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완성도는 부끄러울 뿐이지만, 그래도 이 게임이 나를 일으켜 세우는 역할을 한 것 또한 사실이다. 이 게임으로 인해 게임으로 내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의 중요성에 대해 더 몰입하게 되었다. 그래서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틈만 나면 하는 질문이 하나 생기기도 했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게임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는 건 아니다. 게임을 만들고 싶다. 더욱 더 수다쟁이가 되었으면 좋겠고 내 수다를 전달해주는 게 내가 만드는 게임이었으면 좋겠다는 욕망은 여전하다. 다만 회사 프로젝트는 내 개인 욕망을 투영하긴 어른의 사정을 포함한 여러 이유로 곤란하다. 개인 프로젝트는 여전히 미숙한 실력에, 어쨌든 나(의 의지)란 자원은 유한하고 매우 희귀하다는 문제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게임을 만들고 싶다. ‘이걸 다 언제 만들어?’ 라고, 게임 제작에 대한 아이디어를 정리해 둔 메모가 트렐로 한 구석에 감당 안될 정도로 쌓여있는 걸 보며 자신의 무능력함에 대해 다시금 곱씹어보기도 하지만, 만들고 말테다는 생각도 생기는 가을 밤이다. 천천히, 긴 호흡을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