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아트센터
원작은 전혀 접하지 못한 채로, 묘한 기대감과 흥분으로 약간 상기 된 체 극장으로 들어섰을때, 생각보다도 상당히 작았던 극장 규모와, 때문에 어쩔수 없이 생기는 연기자와 관객과의 가까울 수 밖에 없는 간격에 조금은 긴장했던 탓일까? 연극이 시작하기도 전에 가벼운 피로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조명이 내려가고 연극이 시작하자 마자 바로 몰입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지극히도 짧디 짧은 간격 덕분이리라. 가치관의 기준에 대해서 이야기 하던 남자는 곧 어떤 할아범에게 이끌려 모래의 집에 도착하게 되고,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했다.
고집스럽게 상황을 벗어나려는 남자, 그리고 그 상황에 적응하라고 하는 모래여자. 자신이 주장하는 합리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는 모래여자에게 자신의 합리를 강요하는 남자의 모습에 내내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나 자신을 알아챘을때, 무언가가 섬뜩한 기운이 느껴졌다. 어떻게 보면 웃긴 이야기이지만, 반복적으로 모래가 떨어져 하루 일과가 모래를 퍼올리는 일 밖에 없는 그곳에 대해 왠지 모르게 '뭐, 저 정도면 살만하지, 모래여자란 캐릭터도 꽤 귀여운 구석이 있잖아?(웃음)'라면서 쉽게 납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래여자의 타협은 분명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고, 그것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남자의 주장도 분명 옳기만 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살만하네'라니.이게 무슨 반응이란 말인가?
이미 나의 생활이 모래여자의 그것과 별 반 다르지 않았다는게 문제였을까? 하루 하루가 반복적이고 지리한 일상-그것이 업무가 되었든 생활이 되었든지간에, 남들이 보기에 납득 못 할 일들을 태연하게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벗어나려는 노력은 했었을까? 나와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들 그러니까 너도 그냥 참고 넘겨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자주 했던것 같다. 사방이 막힌 모래집. 하루 하루 반복되는 업무, 타인에게 말도 안되는 만족을 강요하는 상황-그런 미련하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 모래여자의 상황은 (비참하게도) 군대의 그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
내일은 다시 일어나 일을 해야 해. 그것이 이곳의 규칙이고 생활 방식이니까. 한치 앞도 분간 할 수 없을 정도로 짙게 낀 안개를 뚫고 다시 부대로 복귀한 오늘. 나는 이미 모래여자가 되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남자처럼 부질없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이 되었든 그리 유쾌한 기분이 들지 않는 건 왜일까?
Posted by Ire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