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 게임물 등급분류 경험기

들어가기 앞서

게임 규제와 관련, 잊혀질만 하면 나타나 한바탕 시끄럽게 만드는 이슈 중 하나는 게임 등급분류 제도와 관련한 이슈이다. 올해 초에도 비영리 자작 플래시 게임 콘텐츠를 서비스 하던 주전자닷컴 외 5개의 플래시 게임 사이트들이 (아이러니하게도)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서비스를 중단하는 사태가 있었다.1

게임물 등급 분류 제도와 관련한 여러 문제들은 이미 10여년 전인 2008년 부터 계속 제기되어 왔었다. 당시 국회 국정감사에서 2007년 말 온라인 상에서 운영되는 플래시 게임 66,727개의 게임 중 0.35%만이 등급분류를 받았다는 지적이 나왔다.2 이 이후에도 게임물 등급분류 제도와 관련한 굵직 굵직한 문제점들이 계속 터져 나왔는데, 자세한 내용은 아래 목록을 참조 바란다.

  • 2010년 아마추어 게임 심의 사태 – RPG 메이커(쯔꾸르) 커뮤니티에 대한 게임 등급분류 요구로 촉발.
  • 2011년 국내 애플 앱스토어 게임 카테고리 개방 – 이전까지는 게임물 등급분류 제도로 인해 애플, 구글 앱스토어의 게임 카테고리가 막혀 있었다. 이후, 모바일에만 자체 등급 분류를 허용하면서 사태 일단락.
  • 2014년 동인 게임 심의 사태 – 2차 창작 동인 게임에 대한 게임 등급 분류 요구로 촉발. 참고로 2차 창작 동인 게임은 저작권 문제, 동인 성격 등의 문제로 현재 등급분류가 거의 불가능하다.
  • 2014년 스팀 게임 심의 사태 – 게임 DRM 서비스인 스팀에서 유통 중인 게임에 대한 등급분류 요구로 촉발. 현재는 관련 제도가 바뀌어 자율심의가 가능하지만 정작 스팀 및 운영사인 밸브는 여기에 대해 대처를 전혀 하지 않고 있다.
  • 2014년 ‘불워크’ 수정 권고 사태 – 인디 게임인 ‘불워크’의 게임 소개 내용 수정을 게임물관리위원회가 권고하면서 촉발.

이 모든 문제는 낙후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기인한다. 법률은 대한민국에서 유통되는 모든 게임(비영리 포함, 여기에는 국내에서 접근 가능한 해외 서비스-스팀 등-도 포함 된다)은 심의를 받아야 하며, 심의를 받지 않은 상태로 게임물을 유통할 경우 형사 처벌(벌금 및 징역)을 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게임물 등급분류 제도에 대한 다양한 문제점들이 터져 나올 때 마다, 정부(문화체육관광부)와 국회, 그리고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위 문제들을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바다이야기 사태가 남긴 트라우마청소년 보호라는 명목로 인해 사전 심의를 철폐하거나, 비영리 게임물 등에 대한 심의를 완화하는 것은 그간 소극적으로 대처해 왔다.

게임물 등급분류 제도의 문제점들 중에서 가장 발빠르게 해결 된 것은 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들 뿐으로 사실상 특정 기업 특혜에 가까웠던 과거의 모바일 게임 자율 심의. 허울 뿐인 게임물등급분류 기관의 민영화. 통제는 국가가 하면서 모든 책임은 기업에 떠넘긴 자율 심의 제도 등이 있다.

비영리 게임물 등급분류 제도의 탄생

위에서 언급한 비영리 자작 플래시 게임 콘텐츠에 대한 심의 요구 사태로 인해 또 한번 게임 제작자, 게임 사용자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이번에는 정부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이전과는 달리 발빠르게 정책 브리핑 자료3를 내어 제도 개선 시도를 알렸다.

그리고 게임물 등급분류 기관인 게임물 관리 위원회에서도 2019년 4월 25일 부터 비영리 게임물에 대한 등급분류 신청4을 받기 시작했다. 이는 기존의 등급분류 방식에서 비영리 게임물에 물리기 어려운 수수료 부분를 면제하여 등급 분류를 하게 한 것이다.

비영리 게임물 수수료 면제 대상은 일반인들 중, 비영리 목적으로 게임물을 제작 및 유통하는 경우이다. 단 저작권에 문제가 있을 경우 등급분류 처리가 되지 않는다-그런고로 2차 창작 동인 게임은 등급분류 신청을 할 수 없다.

비영리 게임물 등급분류 신청 방법과 처리

비영리 게임물 등급분류를 신청하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게임물관리위원회에 회원 가입을 하고, 공고에 떠 있는 신청서를 꼼꼼히 작성한 후, 담당자 메일(gamerating@grac.or.kr)로 신청서를 보내면 된다.

만약 서류에 오류가 있거나, 게임위 측에서 추가 자료를 필요로 하는 경우, 몇 번의 자료 보충 안내가 메일로 내려온다. 이러한 과정이 끝나면 게임은 등급분류 회의를 거쳐 등급이 확정되고, 등급분류증명서와 함께 안내 메일이 오게 된다.

비영리 게임물 등급분류 신청 시작

제도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이 끝났으니 이제부터 등급분류 경험을 이야기해 보겠다. 등급분류를 신청한 게임은 2008년에 개인적인 공부 및 당시 게임 등급분류 제도를 ‘까기’위해 만들었던 플래시 게임인 GRBT 였다 – 게임 제작과 관련한 글과 게임 다운로드는 여기를 참조 바란다.

GRBT – 지도상에 나타나는 게임물을 클릭하면 심의 처리가 된다. 하지만 미친듯이 많이 등장한다.

신청서 작성은 한컴의 한글 워드프로세서(HWP)를 사용해야 한다. 사실상 공공기관 이외의 사용률이 극히 저조한 프로그램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행정 접근성 면에서 올바른 일인가 하는 의문이 잠깐 들었다.

신청 서류는 비영리 게임이라고 해서 기존의 신청 양식과 크게 다른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신청서, 내용정보 기술서, 설명서 등은 일반적인 등급분류 신청 양식과 동일하고 여기에 일종의 ‘서약서’만 추가 되어 있는 형태다.

GRBT는 매우 단순한 게임이었기 때문에 신청서 작성과 관련 자료 준비는 사실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한번 더 검토를 하고 신청 메일을 보냈을 때 까지도 걸린 시간은 2시간 내외였다. 이 때 까지만 해도, 금방 등급분류가 나올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기나긴 서류 수정

메일 신청 후 만 하루가 지나서 서류 보완을 요청하는 메일이 도착했다.

보내주신 서류에 게임파일이 누락되어 보완요청 드립니다.

1차 서류 보완 메일

아니, 게임 등급분류를 신청하면서 게임물을 안 보내?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착오를 했던 분명한 이유가 있었는데, 공고에서는 게임파일 제출을 필수가 아닌 필요시로 명기 했놨기 때문이었다.

접수 시 제출자료 – 관련 공고에서 확인 가능하다

이후에도 게임물 내용이 담긴 동영상을 추가로 요구하기도 했는데, 위에서 확인 가능하듯, 애초에 필수 제출이라고 하지도 않았던 것들을 요청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내심 짜증이 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일이 자료 제출에서만 끝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현재 위원회에서는 한글과 영문을 같이 병행해서 제명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제명을 변경 후 회신 해주시기 바랍니다.

2차 서류 보완 메일
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게임 제명에 한글과 영문을 병기하는 규정은 있다.5 문제는 그 규정이 규정집 안에만 있고, 서류 양식 작성법 등 안내는 전혀 없었다는 것.

이후에도 서류 보완 문제는 계속 발생했다. 이번에는 게임 동영상을 첨부하지 않았다는 것. 동영상 역시 게임물 첨부 문제와 마찬가지로 필요시로 안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때는 짜증이 거의 한계에 다달았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동영상 제출 이후에 발생 했다.

제출하신 게임 동영상을 확인 결과 미션 실패관련 영상만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션 성공 영상을 추가로 제출하여 주시기 바라며, 미션 성공시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 미션성공시 다음 스테이지로 진입, 미션성공시 스코어를 저장 등.

4차 서류 보완 메일

GRBT는 (해당 개발 문서에도 나와 있듯) 국감에서의 말도 안되는 지적을 풍자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이를 위해 게임을 클리어 하지 못하도록 난이도를 세팅해 두었다. 때문에 1. 제작자도 미션 성공이 거의 불가능 2. 만든지 10년이 더 넘은 게임이라 치트 모드 등 삽입 불가능(이제는 플래시 라이센스도 없다) 한 문제가 있었다.

이 때 부터는 서류 보완 요청 ▶ 수정 서류 제출 ▶ 결과 메일 전달 단계를 거칠 때 마다 거의 일주일을 소모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진짜 심의 포기를 내릴까 말까 하는 고민에 휩싸였다. 그냥 호기심에서 시작한 일이 이런식으로 사람 정신을 잡아먹는 일이 되어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라는 생각으로 성공 영상 제공이 어려운 이유, 그리고 게임에서 성공이 어려운 이유에 대한 답변과, 서류 제출에 대한 문의 메일을 보냈다. 제기 된 서류 문제에 대한 답이 오길 기다린 끝에, 일주일이 지난 다음 답 메일을 받았다.

신청하신 ‘GRBT: Game Rating Board Tycoon(지알비티: 게임 등급 분류 타이쿤)’ 게임물이 2019년 5월 29일 제20차 게임물관리위원회 회의에서 ‘전체이용가’로 등급결정 되었음을 안내드립니다.

등급분류 결정 안내 메일

2019년 5월 9일에 처음 접수를 한 이후, 2019년 6월 3일에 갑작스러운 등급결정 안내 메일을 받았다. 한달이 조금 안 되는 기간이 소요 된 것이다.

직접 경험해 본 제도의 문제점

사실 개인적으로 비영리 게임물 등급분류 제도를 이런식으로 만든 이유를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직접 심의 신청을 해보고, 등급분류를 받기까지, 많은 문제들이 눈에 띄었고, 기관 및 제도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네이버 웹툰 – 하이브 중

첫째, 제도 시행에 실제 수요자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비영리 게임물 등급분류 제도의 주 수요자는 게임위의 공고에도 나와 있듯, 청소년, 일반 아마추어 게임 개발자 등이 주 수요 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접수 서류 및 행정 절차, 규정은 기존의 기업 대상의 등급분류 제도를 그대로 따왔다. (단지 수수료만 면제 했을 뿐이다)

즉, 청소년이나 일반 아마추어 게임 개발자들이 규정집을 찾아가면서 서류를 꼼꼼히 작성 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너는 작성에 한 시간도 안 걸렸다며? 그거야 나는 업계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이니까. 게다가 그 서류는 한달 가까이 보완 요청을 받았다. 게임 제작 수업을 받고 있는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네가 만든 게임을 친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둘째, 게임 제작에 들이는 노력보다 심의에 들이는 노력이 더 크다. 등급분류를 신청한 GRBT를 만드는에 얼마만큼의 시간이 들었을까? 물론 개인적으로는 말도 안되게 긴 시간이 걸렸지만, 사실 플래시를 익숙하게 다루는 사람이라면 제작에 1시간도 안 걸릴 게임이다. 그런데 등급결정 까지 소요 된 시간은 한달 가까이 걸렸다.

제작에는 1시간 밖에 안 걸리는 게임이 심의 등급 받는데 한달이라고? 그리고 그게 끝나야 친구들에게 내가 만든 게임을 자랑 할 수 있다고? 과연 수요자들이 제도를 쓰려고 할까? 선택은 두 가지 중 하나다. 게임 제작을 때려치우고 준법 시민의 삶을 살던가, 심의를 받지 않고 게임을 배포해 범죄자로 살던가.

셋째, 별 일 아닌 일을 크게 만들어 행정력을 낭비하고 있다. 심의등급 분류를 위해 제작자와 등급분류 담당자와 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수정을 요청하고, 수정해서 답하고, 그걸 검토하고, 또 다시 수정을 요청하는 일들이 계속 되었다.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는 게임의 등급분류를 위해 행정력이 한달 동안이나 투입됐다는 것도 생각 해보자. 명백한 세금 낭비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넷째, 일 처리 과정이 깜깜하다. 모든 과정이 메일을 통해 이뤄지는 것은 대체 내가 신청한 일이 어디까지 처리 되었는지 모르게 만든다. 답 메일을 받는게 일주일 단위로 늘어지기 까지했다. 안되겠거니 하고 포기하려는 순간에 등급분류 결정 메일을 받았다. 행정 및 공공기관에서 민원에 대한 적절한 피드백을 중시한지도 십수년이 지났다. 굳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는 경험을 하고 싶진 않았다.

이젠 이 문제 좀 해결합시다(제발)

똑같은 일이 10년이 넘게 반복 되었다. 그때 마다 여론이 잠깐 시끄러워지고 대책을 발표하고. …… 그 뿐이었다.

게임위에서 비영리 게임 등급분류 수수료를 면제한다고 했을 때,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이 문제는 어차피 등급분류제도의 근간인 법이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게임위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이런 임시조치 뿐이란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솔직히 이렇게 할 거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게 낫지 않나 싶다.

내가 이른바 최근의 게임 질병 등록 반대 운동에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사실 이 문제와 연관이 있다. 게임인-특히 산업계는 이 문제에 대해 공개적인 코멘트를 한 적이 없다. 직접 이해 당사자인 학생 개발자, 동인 게임 개발자, 아마추어 게임 개발자 등 미래의 게임 산업을 담당하게 될 사람들만 목소리를 높여왔고, 이들은 실망감만 쌓은 채 게임 산업의 구성원이 되었다.

이 나라는 게임을 자유롭게 만들고 배포 할 자유부터 막혀있다. 이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도 10년이 넘도록 해결 못하면서 게임은 문화다라고 주장 할 수 있는가?

게임 심의 – 내 게임이 심의를 받아야 하는가요?

  • 주의: 아래의 내용은 참고용으로만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이 글의 내용에 따른 법적인 책임까지 보장하지는 못합니다.

내 게임이 심의 대상인가?

원칙적으로 국내에 유통되는 모든 게임은 심의를 받아야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을 대상으로 서비스 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은 외국의 게임물들도 국내에서 서비스 접근이 가능하다면 심의를 받아야 하는 대상입니다(예: 스팀에 서비스 되는 모든 게임들).

가끔 뉴스나 게시판 등에서 흘러 나오는 “한국어 서비스를 하지 않으면 괜찮다”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법 집행 기관의 임의적인 판단일 뿐 입니다. 어지간하면 괜찮다는 뜻이지, 문제가 발생 할 경우 책임은 모두 제작자가 져야 합니다.

어디서 심의를 받으면 되나?

국내의 게임 심의 처리 기관은 두 곳이 있습니다.

만약 유통하고자 하는 플랫폼이 자체등급분류사업자로 지정되어 있다면, 해당 플랫폼에서의 자체 등급 분류로 심의를 대신하게 됩니다(단, 청소년이용불가 게임 제외). 2019년 5월 현재 자체등급분류사업자는 아래 목록과 같습니다.

  • 구글
  • 애플
  • 소니인터렉티브엔터테인먼트코리아
  • 오큘러스 VR
  • 원스토어
  • 카카오 게임즈
  • 삼성전자

비영리 목적의 습작도 심의를 받아야 하나?

폐쇄적인 커뮤니티에서 알음알음 공유하는 것이 아닌 대중에게 게임을 배포하는 경우 비영리라고 하더라도 심의를 받아야만 합니다. 현재 게임위에서는 비영리 목적, 창작 등의 활동에 해당하는 게임 중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게임에 한하여 등급분류 수수료를 면제 하고 있습니다.

해외 제작자가 개인 자격으로 게임 심의를 받을 수 있나?

몇 년 전에 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고, 게임위에서도 해외 게임 제작자가 게임 심의를 신청 할 수 있도록 프로세스를 만들겠다고 했었지만, 현재는 사실상 유야무야 된 것으로 보입니다.

아쉽지만 해외 제작자가 게임물관리위원회나 게임콘텐츠등급분류위원회의 심의를 받기 위해서는 국내 유통사나 법률 대리인을 확보해 심의를 받아야 합니다.

심의 제도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어떻게 얻으면 되나?

게임물관리위원회 홈페이지의 등급분류제도안내 페이지를 우선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심의 행정에 대한 관련 근거는 관련 법률인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사행행위 등 규제 및 처벌특례법 을 일독 하시길 권장합니다.

사후검토: A 프로젝트

프로젝트 소개

A 프로젝트는 아케이드 업소용으로 제작된 터치 디바이스 기반 미니게임 모음 게임이다. 코나미 Konami 의 ‘비시바시 Bishibashi 시리즈’, 엑스포테이토의 ‘컴 온 베이비 Come on Baby’와 비슷한 구조의 아케이드 게임으로 터치 스크린을 이용한 미니 게임들을 새로 디자인 하여 게임 내에 삽입 하였다.

비슷한 게임
프로젝트와 비슷한 포지션의 비시바시(좌) 컴온 베이비(우)

게임을 시작하면 캐릭터 선택 및 기기가 지정해주는 미니 게임을 선택하여 최대 3~4 개의 미니 게임을 연속으로 즐길 수 있다. 매장 내 동일 기기 간 네트워크 연결을 지원하여 점수 경쟁을 통한 ‘경쟁 모드’가 구현되어있다.

프로젝트는 베타 릴리즈 상태로 사내에서 잠정 중단 된 상태이다-현재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인원 전원이 다른 프로젝트에 배속, 퇴사 등으로 인하여 팀이 흩어져 있으며, 사실상 프로젝트가 와해되어있는 상황이다.

  • 프로젝트: A Project
  • 플랫폼: 아케이드 업소용 – 윈도우즈 / PC 플랫폼
  • 기기: 커스텀 PC / 터치 스크린
  • 개발 기간: 2009. 06. ~ 2010. 05. (12 개월)
  • 개발 인력: 약 110 M/M (월 평균 약 9 M/M, 최대 인원 Full Time: 9, Part Time: 3)
  • 상태: 베타 릴리즈 / 프로젝트 잠정 중단1

잘 된 부분

프로젝트 개발 프로세스 정립

프로젝트 초창기에는 개발 프로세스라는 형태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는 않았다. 나름 게임 개발 업계에서 십 수년간 몸 담은 사람들이 경영진에 포진하고 있고, 마니아 층을 형성한 게임을 제작하고, 온라인 게임 개발도 한 견실한 업체였음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 관리는 거의 전무하였으며, 초창기 개발 현장에서 보여지는 주먹구구식 개발 환경이 난립하는 회사 상황에서 팀 내의 개발 프로세스를 확립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팀 내에 개발 프로세스를 도입 할 때의 팀원들의 저항(그런 것 없이도 우린 잘 해왔다 식의)이 있을 것이라 예상되었기 때문에, 팀 내에서 뜻을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 – 게임 디자인 파트에서 먼저 프로젝트에 필요한 의사소통 라인을 만들었다. 회의 및 개별 면담 후, 개발 문서를 제작 이를 SVN을 이용하여 일괄 배포하였고, 지속적으로 수정하고 재배포 함으로써 개발 중 발생하는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억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리고 개발 중 발생하는 이슈를 이슈 트래커 Issue Tracker 인 맨티스 Mantis 를 이용하여 모든 이슈 사항을 기록하였다.

개발 중 이슈 트래커로 이용한 맨티스

기반 시스템이 완성 된 이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개발 프로세스 관련 문제가 불거질 때 마다, 그래픽 파트, 기획 파트 등의 인력 들을 하나 둘 설득해 가면서, 개발 프로세스를 위한 관련 툴의 사용법을 교육하고,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를 팀원 하나 하나에 넓혀가면서, 팀 전체가 하나로 정립된 프로세스에 맞춰 업무를 진행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약 3~4개월에 걸쳐 이를 천천히 추진함으로써, 새로운 개발 프로세스에 대한 팀 내 저항을 최소화 하였으며, 개발 프로세스 정립으로 인한 장점들을 팀원들 하나 하나가 체득해 나가면서 프로젝트의 진행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프로세스에 대한 전체적인 관리는 각 개발 파트(게임 디자인, 프로그래밍, 그래픽)의 팀장들이 각 팀원들에 대한 업무 관리를 진행하였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협업 개발 툴(개발 페이지, SVN,맨티스)에 대하여 별도 관리 담당자를 지정하여 팀원들이 개발 툴을 100% 활용 할 수 있도록 서포트 하였다. 별도로 제작된 개발 페이지에서는 개발 일정, 최신 개발 이슈 현황, 일일 빌드 현황을 개발 팀원 누구라도 손쉽게 확인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매 주 정기 회의에서는 통계 처리된 업무 진척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객관화 된 프로젝트 진척 상황의 공유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리소스 관리 및 배포

프로젝트 진행 중 발생하는 모든 리소스는 SVN Subversion 을 이용하여 관리/배포 하였다-팀 내 SVN을 도입 하기 이전에는 메일과 공유 폴더를 이용하여 리소스가 관리되고 있었다. SVN에서 프로그램 소스 뿐만 아니라 모든 문서, 그래픽 및 사운드 리소스, 심지어 일일 빌드 결과물까지 통합적으로 관리하여 개발 도중 리소스를 분실하여 시간을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물론 모든 리소스를 SVN에 관리하다 보니 개발 후반부에 SVN이 점차 느려지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개발 문서의 경우 수정 사항이 발생 할 경우, 해당 수정 사항을 반영한 문서를 바로 커밋하여 팀원들이 항상 최신의 문서에 접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SVN의 기록 기능과 문서 상에 수정 이력, 그리고 해당 이슈에 기록을 통하여 수정 사항에 대해서 팀원들이 놓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그래픽 리소스에 대해서도 기존 개인 작업 폴더 – 공유 폴더로 유지 되면서 버전관리 및 리소스 관리가 되지 않았던 부분을 SVN에 통합시키므로써, 리소스 분실, 중복, 과거 내용을 덮어 씌우는 사고 발생이 줄어들었으며, 이는 프로젝트 수행 시간을 절약하는데 많은 역할을 하였다.

SVN을 관리하는 담당자가 배정되어, 팀원들에 대한 SVN 이용법 교육, 사용자 문제 해결, SVN 저장소 관리 등의 업무를 진행하였으며, SVN 이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공유하고, 해당 가이드라인에 맞게 관리 함으로써, 효율적인 업무 진행을 이끌어내었다.

또한 빌드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여, 전날 작업 된 결과물을 바로 다음 날 확인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게임 디자인 담당이 매일 아침 빌드 된 게임을 테스트 하면서 일반적인 버그 및 실행 오류 등의 문제를 잡아내고, 이를 즉시 처리했기 때문에 프로젝트 후반까지 자잘한 버그로 인하여 고생하는 경우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팀원들은 매일 새로운 빌드를 가지고 30분 ~ 1시간씩 이른바 ‘개밥 먹기’에 동원 되어 게임을 테스트 하고 문제 사항을 수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빌드 자동화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CC.net을 사용했다
프로토타이핑

미니 게임 제작 시의 기본 제작 프로세스는 제안 – 게임 디자인 검수 – 프로토타이핑 – 사내 테스트 – 실 제작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게임 1종 당 보통 1~3개월의 개발 기간이 소요 되었다. 미니 게임에 대한 프로토타이핑은 ‘재미있는 게임’과 ‘재미없는 게임’을 사전에 걸러내는 필터 역할을 충실하게 하였다. 제안서 상 재미있을 것 같은 게임이 막상 구현 시 재미없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 수 있는 방법은 빠른 프로토타이핑 뿐이며, 덕분에 난립하는 제안서 중에서 제대로 된 미니 게임들을 선택하여 게임 내에 포함 시킬 수 있었다.

초기 미니게임 프로토타입 중 하나

잘 되지 못한 부분

일관된 프로젝트 목표 부재

처음 프로젝트가 킥 오프 될 당시 제품 목표는 아케이드 업소를 찾는 라이트 유저-게임 소비 시간이 한정적이고 캐주얼 게임을 즐기는 층을 시장 목표로 잡고 이에 어필 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시장 목표의 특성으로 여성과 어린이, 그리고 복잡한 게임에 익숙하지 않고 경쟁보다는 즐거움을 소비하는 것으로 자체 리서치 결과 판단되었고, 이에 대한 팀원들의 이해와 공유가 이뤄진 상태에서 프로젝트는 진행되고 있었다.

파국이 찾아온 것은 게임 개발이 어느 정도 완료된 이후 제품에 대한 포커스 그룹 테스트가 진행된 이후였다. 테스트 결과 주요 항목 평균이 10점 만점에 7~8점을 기록했기 때문에 최종 발매 결정에 별 다른 장애가 없을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갑작스럽게 프로젝트 목표를 라이트 유저 및 헤비 유저(대전 액션 등의 게임을 즐기는 하드 코어 유저) 성향의 소비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게임으로 일방적으로 변경 된 것이다.

이미 제품의 개발이 막바지에 다다른 상황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결국 무리한 설계 변경과 게임 난이도 변경을 통하여 게임은 애초의 기획과는 다르게 색이 불분명한 게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게임은 지나치게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이를 지속적으로 즐기기 위한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아닌 형태가 되었고, 애초 프로젝트 목표였던 라이트 유저에게는 다가가기 힘든, 그리고 헤비 유저들에게는 난이도만 높고 따분한 게임이 되어버린 것이다.

비 상식적인 일정과 몰아 붙이기 식 팀 관리

프로젝트를 시작 할 때 제안서 상에 의하면 개발 예상 기간, 개발 예산, 소요 인력, 예상 매출액 등이 존재했지만, 사실 어느 항목 하나 제대로 된 ‘근거 자료’는 전무했다. 때문에 말도 안되는 개발 일정이 팀원들에게 떨어졌다. 초기 개발 예상 기간은 실제 실무자들의 예측에 비하여 반 이상 짧게 잡혀 있었고, 이에 대한 어필을 하더라도, 개발 기간 연장은 관행인 것 마냥 이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결국 이런 태도가 경영진의 팀 및 프로젝트에 대한 불신을 부채질 한 원인 중 하나였다.

이런 책이 괜히 있는 것은 아니다 – 맨먼스 미신

제품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 활동이 일정상 불가능 한 상황에서 어처구니 없는 개발 스펙을 요구하는 일도 비일비재 했다. 개발 팀의 역량, 현재 상태, 필요 자원 등에 대한 고려는 일절 무시 한 체, 안되면 말지 식의 제안이 나오는 경우도 허다 했다. 개발 팀은 현실적인 개발 스펙 제시 및 이에 대한 수정 일정을 제시하고 이를 철저하게 지키는 데 역량을 집중했다. 때문에 최소한 ‘본인 입에서 나온 일정’은 지킬 수 있었다.

위기 관리 능력 부재

어떠한 프로젝트든 마찬가지로 위험은 존재하는 법이며, 이 프로젝트에서도 각종 위험 요소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프로젝트에 대한 경영진의 신뢰 여부였는데, 경영진과 팀간의 커뮤니케이션은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나중에 확인 된 일이었지만, 경영진이 알고 있는 프로젝트와 개발 팀이 알고 있는 프로젝트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인적자원과 관련한 문제도 존재했다. 프로그램 팀장의 병역특례와 관련하여 훈련소 입소 문제는 프로젝트 시작 전부터 확인 된 문제였고 이를 회피 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체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 막바지에 이르러 입소하게 하는 상황을 자초했다-덕분에 프로젝트는 프로그램 팀장의 군사 훈련 기간 동안 진척 없이 표류하기만 했다.

잘못 설정한 프로젝트 진행 기간으로 인하여 제작 필수 인력을 타 팀에 빼앗기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무리한 일정을 기반으로 다른 팀과 인력 교류를 약속했다가, 역시 프로젝트 막바지에 해당 인력이 팀을 옮기는 상황이 발생하였는데도, 이에 대한 대체 인력 충원 등의 대책은 나오지 않았고 프로젝트는 그냥 속행 되었다.


결과

프로젝트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았고, 사실상 실패(게임 업계에서 ‘잠정 중단’은 ‘영구 폐기’와 유의어)하였다. 팀 내/외에서 많은 문제점들이 있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을지 모르지만, 덕분에 프로젝트 관리와 리더십에 대한 반면교사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프로젝트의 목표 설정, 관리, 리더십에 관하여 성찰을 하는 데 더 없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은 이 성공하지 못한 프로젝트가 가진 가장 큰 성공이 아닐까.


  1.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전해 들은 바로는 게임은 해외 시장에서 정식 발매 및 유통이 되었었다고 한다.(2019. 05. 08.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