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가을 어느날.

2019년의 4월은 지금 다시 돌이켜봐도 매우 잔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월 당시는 오히려 아무렇지 않았는데, 미안함, 아쉬움, 분노, 좌절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과 함께 안도가 뒤섞여 있던 탓이 클 테다. 물론 비율 같은 건 무시하고 뒤섞인 감정들이 정신적인 측면에 도움이 되었는가 하면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다행이, 여러 도움으로 지금은 2년전의 봄에 비하면 상황은 많이 안정되었지만, 그때의 후유증은 아직 남아있다.

파이드 파이퍼스에서의 경험은 어쨌든 인생의 1/4를 차지할 만큼 내 인생에 큼지막한 궤적을 남겼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에는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던 여러 경험, 그리고 잘못을 나중에 정신 차리고 정산하게 되니 후회보다는 앞으로 취해야 할 내 스스로의 자세에 대해 명확하게 확신이 서기 시작했단 것이다. 이런 득도(?)가 그 잔인했던 봄 이전에 있었다면 싶을 정도로 파이드 파이퍼스(와 이후 네오위즈의 동료들은)는 분명 나를 성장 시켰음은 분명하다. 내가 능력이 너무 모자라 그것을 너무 늦게 받아들였을 뿐.

2019년 4월부터 2020년 6월까지 나는 마치 겉과 속이 다른 것처럼 행동했던 것 같다. 겉으로는 자신감 있게 이것 저것 떠들었으나, 그 근본에는 ‘내 이야기가 잘못되었으면 어떻게 하지?’ 같은 공포가 심연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한동안 심연의 공포는, 인지 저 편에 넘겨두고 바라보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스스로 발목 잡는 결정을 하는 건 결국 인지의 문 저편에 가둬 둔 공포가 작게 열린 틈 사이로 손을 뻗어올 때였다.

직장 생활을 다시 시작하고 개인, 가정의 안정을 찾기 시작하면서 부정적인 생각은 많이 내려놓게 되었다. 자신감 있던 척 하던 수다는 줄었지만, 오히려 반대로 심연이 빠르게 매워졌다. 그저 기분 탓은 아니다. 다행이도.

지금의 직장을 구할 때, 게임 제작에 직접적인 참여를 하는 포지션(게임 디자인, PD, 디렉터 같은)에 지원은 일부러 회피했다. 처음에는 심연이 또 한 번 손을 뻗어 발목을 잡았지만, 지금은 그것과 별개로 팀 작업 프로젝트에서 제작 참여 포지션을 맡고 싶은 생각이 당분간 없다.

항상 이 블로그를 통해 말해왔지만, 게임을 만든다는 것은 남들에게 경험시켜 주고자 하는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일이다.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기 전까지는 함부로 깝치지(?) 말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파이드 파이퍼스의 경험에서 생긴 부작용 Side Effect 이다. 낙서는 낙서장에, 게임 개발을 낙서장 삼았을 때 – 그리고 그게 팀 단위로 움직이는 일이 되었을 때의 참혹한 결과를 만든다는 게 나름 신조가 되었다.

게임 제작을 하고 싶지 않다는 건 아니다. 올해의 게임 시뮬레이터는 내가 하고 싶은, 그리고 남들에게 경험시켜주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게임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완성도는 부끄러울 뿐이지만, 그래도 이 게임이 나를 일으켜 세우는 역할을 한 것 또한 사실이다. 이 게임으로 인해 게임으로 내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의 중요성에 대해 더 몰입하게 되었다. 그래서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틈만 나면 하는 질문이 하나 생기기도 했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게임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는 건 아니다. 게임을 만들고 싶다. 더욱 더 수다쟁이가 되었으면 좋겠고 내 수다를 전달해주는 게 내가 만드는 게임이었으면 좋겠다는 욕망은 여전하다. 다만 회사 프로젝트는 내 개인 욕망을 투영하긴 어른의 사정을 포함한 여러 이유로 곤란하다. 개인 프로젝트는 여전히 미숙한 실력에, 어쨌든 나(의 의지)란 자원은 유한하고 매우 희귀하다는 문제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게임을 만들고 싶다. ‘이걸 다 언제 만들어?’ 라고, 게임 제작에 대한 아이디어를 정리해 둔 메모가 트렐로 한 구석에 감당 안될 정도로 쌓여있는 걸 보며 자신의 무능력함에 대해 다시금 곱씹어보기도 하지만, 만들고 말테다는 생각도 생기는 가을 밤이다. 천천히, 긴 호흡을 가지고.

게임 포커스 그룹 테스트(FGT)의 이해

포커스 그룹 테스트란

포커스 그룹 테스트는 사회과학 연구조사방법론으로 부터 시작되었으며, 이후 기업에서 비즈니스 전략이나 마케팅 전략에 대한 주요 검증 방법 중 하나로 사용 되기 시작되었다. 비디오 게임 산업에서는 현재 개발 중인 프로젝트에 대한 전반적인 제작 품질 및, 게임의 사업적인 성공 여부를 예측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포커스 그룹이란 특정한 성향 또는 분류에 따라 묶인 하나 이상의 집단 Group 이다. 이들은 일반적인 사회과학 연구조사 시 이용되는 무작위 표본이 아닌, 테스트 진행자의 의도에 따라 고도의 선별 작업을 거쳐 선정된 표본이다. 이들 표본을 선정하는 기준과 방법은 테스트의 목적 Target 과 목표 Goal 에 따라 결정된다 – 따라서 선별 방법에 지정된 방법이나 불변의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포커스 그룹을 선정하는 것 만큼 테스트를 진행 것 또한 목적과 목표에 따라 여러가지 방법으로 나뉜다. 30명 이내1의 적은 수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 심층 면담 혹은 주관적인 설문 등을 할 수도 있고, 대단위의 인원을 선별하여 테스트를 진행할 경우, 설문지 기법을 통한 통계 처리도 가능할 것이다. 국내외의 대형 게임 개발사들의 경우, 포커스 그룹에 대한 관찰법(테스터들이 게임을 플레이 하는 동안, 플레이 영상 기록이나 게임 로깅은 물론, 심전도 확인, 아이 트래킹 Eye Tracking 2 등)을 이용한 테스트를 진행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바이오메틱 테스트 예시

게임 개발에서의 포커스 그룹 테스트

게임 개발에서 포커스 그룹 테스트는 대체로 게임 개발 중의 특정 시점에 이뤄지며, 주로 현재 개발 중인 게임이 소비자 타겟 유저 층에 ‘먹힐만 한가?’를 검증하기 위해 사용된다. 검증하는 범위는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지만, 게임 자체에 대한 총평을 듣는 것이 일반적이며 여기에 더해 각 파트(게임 디자인, 아트, 사운드 등)에 대한 피드백을 받기도 한다(당연히 테스트 중 나타난 버그에 대한 리포팅도 테스트 결과로 활용된다).

일반적인 경우 포커스 그룹 테스트를 진행하는 것은 개발 중인 게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예상 소비자”가 만들고 있는 게임을 처음 플레이 하는 경우가 절대 다수이다. 때문에 포커스 그룹 테스트는 개발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만들고 있는 게임을 예비 소비자들에게 최초로 소개하는 자리가 될 수 밖에 없다. 포커스 그룹이 아무리 잘 선별 되어 있고, 해당 산업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들은 소비자 1로 감안을 할 필요가 있다. 즉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개발 중인 게임에 대해 매우 냉혹한 평가를 내릴 것이기 때문에 엉성한 결과물을 가지고 테스트를 진행 할 경우, 질 좋은 피드백(그게 비판이든 칭찬이든)을 받기 어렵게 만든다.

비디오 게임 포커스 그룹 테스트의 진행

포커스 그룹 테스트를 위해서 우선 준비해야 할 것은 테스트의 목적과 목표의 설정이다. 이는 (보통의 사회과학 연구조사가 그러하듯) 구체적이고 명확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단순히 “이 게임은 사람들에게 재미있는가?” 가 아니라, “이 게임은 20대 이상의 성인 남성에게서 기준 금액 이상의 소비를 유도할 수 있다” 같은 구체적인 가설을 설정하고 이를 검증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보통 게임의 경우에는 이런 이유로 포커스 그룹 테스트의 목표가 게임 제작 비전과 유사하거나 동일하게 된다).

테스트의 목적과 목표의 설정이 완료되면, 테스트에 참여할 포커스 그룹을 선정해야 한다. 게임 개발에 앞서 사용자 페르소나 Persona3를 만들어뒀다면 포커스 그룹을 구성하는데 조금 더 수월할 것이다. 대상자는 소비자 타겟, 포커스 그룹 테스트의 목표, 목적이 세심하게 고려되어야 하며, 이러한 고려 없이 테스터가 선별 되어서는 절대 안된다.

사용자 페르소나 예시

포커스 그룹을 선정하는데에 있어 작은 규모의 회사나 개인이 진행하기 여려운 점이 많기 때문에 전문 설문조사 업체 등을 통해 이를 외주 업무화 하는 경우도 많다.

테스트 그룹을 선정함과 동시에 포커스 그룹 테스트 설계를 진행해야 한다. 테스트에 필요한 게임 제작은 당연한 일이니 굳이 자세히 언급하진 않겠다. 테스트 방법은 앞서 이야기 한 여러 방법 중 하나를 취사 선택하게 되며 선택의 기준은 마찬가지로 테스트의 목적과 목표에 따른다.

테스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방법으로 대부분의 경우 설문지 기법 혹은 인터뷰 기법을 사용할 것인데, 각각의 방법은 장단점이 있다. 간단히 언급하자면 아래와 같이 나눌 수 있다4

설문지 기법

  • 객관식 혹은 주관식 문항을 지면 혹은 단말기(PC 혹은 기타 IT 기기)를 이용하여 테스터에게 작성하도록 하는 방법. 객관식 문항 및 통계 분석을 통한 정량적 분석과 주관식 문항을 통한 정성적 분석이 모두 가능하다.
  • 설문지 작성을 위한 필요 진행 인원이 인터뷰 기법에 비해 적고, 진행 인원의 숙련도에 덜 영향을 받는다.
  • 설문지에 대한 오독, 오해의 여지가 있으며, 때문에 설문지 제작이 매우 까다롭다. 전문적인 설문지 제작자가 필요하다.
  • 정량적 분석을 위해서 대량의 표본이 필요하다.

인터뷰 기법

  • 테스터 1인 혹은 일정 집단에 대해 전문 인터뷰어 Interviewer 가 직접 대면 / 질의 응답을 통해 결과를 도출하는 방법이다.
  • 진행 요원의 숙련도가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 오독, 오해의 여지를 바로 해소할 수 있으나 이는 진행 요원의 숙련도에 따른다.
  • 설문지 기법에 비해 적은 수의 인원을 테스트를 해도 된다. 단, 설문지 기법에 비해 인원 당 소요 시간이 매우 긴 편이다.

테스트 결과 데이터를 가공하고 이를 의미 있는 결과로 정리하면 포커스 그룹 테스트는 종료된다. 이후에는 최종 보고서를 가지고 프로젝트에 대한 평가를 마무리하고, 앞으로의 개선점을 찾아 프로젝트의 방향을 조정하는 일만 남는다.

결언

포커스 그룹 테스트의 준비 기간은 최소 한 달 이상. 이를 준비하고 실행하고 또한 분석하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기 때문에 포커스 그룹 테스트는 쉽사리 시행하기 어렵다. 또한 포커스 그룹 테스트로 인해 생기는 프로젝트의 단기 목표의 변화 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실행에 신중해야 한다.

포커스 그룹 테스트가 활발하게 이뤄졌던 북미 게임 산업에서는 종종 포커스 그룹 테스트에 대한 무용론이 펼쳐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포커스 그룹 테스트에서 무참히 까이기만 했던 심즈는 기네스북에 비디오 게임 판매량 분야 기록을 갈아치우기도 했다. 아직까지도 게임 디자인이 정형화되어 있지 않고 발전 가능성이 많은 비디오 게임 분야에서 정형성을 검증하는 포커스 그룹 테스트는 마찬가지로 발전해야 하는 부분이 많은게 사실이다.

하지만 포커스 그룹 테스트가 완전히 무용하지는 않다. 잘 정제된 목표와 이에 따라 절제되어 설계된 테스트를 통해 게임 개발자가 간과하고 있던 지점을 찾아내는데는 사실 이만한 기법만한 게 없다. 테스트 중 발생하는 사용자의 반응이나 테스트 이후 전달되는 피드백은 게임 개발의 방향성을 유지하면서 더 나은 개선점을 찾을 수 있게 하는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정리하자면 포커스 그룹 테스트를 게임의 비전이나 제작자의 의도가 옳고 그름을 확인하는데 쓰기 보다는 게임의 비전과 제작자의 의도가 제대로 반영되었는지를 테스트하는 용도로 사용해야 한다. 당신이 모르는 비전을 평범한 소비자인 포커스 그룹이 알고 있을 거란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1. 통계학에서 정규 분포를 따르는 최소 샘플의 수

  2. 사용자의 시선을 체크하여 어느 부분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 하는 기법

  3. 가상으로 설정한 주 사용자 층에 대한 가상 인격 데이터

  4.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사회과학 조사방법론 혹은 마케팅, 통계학 관련 학문을 공부해 볼 것을 추천한다.

크래프톤 웨이

(띠지의 내용과는 다르게 실제 크래프톤이 게임 제작 명가가 되었는지는 더 많은 사람들의 동의가 필요하단 생각입니다)

크래프톤 웨이는 여러모로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책입니다. 이 책이 나오는 시점의 크래프톤은 주식 시장 상장을 위한 기업 공개를 앞두고 있고, 공모 대박에 편승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현재까지도 드글드글합니다. 바로 얼마전까지 공모가가 인정 못 받았다느니, 최대 금액으로 결정 되었다느니 하는 식의 여러 이야기들도 나오고 있죠.

거기에 크래프톤의 대외 이미지는 그렇게 썩 좋은 편은 아닙니다. 물론 일반인들 입장에서야 크래프톤은 펍지(PUBG: PlayersUnknown’s Battalgrounds)로 유명한 돈 잘버는 게임 회사란 이미지이지만, 불루홀 창업 당시 불거졌던 NC 소송전, 초기 테라의 실패, 어린 여성에 대한 대상화를 통해 기사회생 했다는 일부의 평가, 거기에 의장이 공개적으로 주 52시간제를 반박하다 여론의 역풍을 맞기도 했고,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게임 업계에 만연한 잘못된 구조조정 방식으로 인해 여러 뒷 이야기가 오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이 책이 일종의 이미지 세탁이나 프로파간다 용 책이 되지 않을까 의심스러울 수 밖에요.

하지만 개인적인 감상으로 이 책은 일종의 오답 노트에 가깝다고 보입니다.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기업은 생존 만으로도 많은 가치를 가지지만, 어쨌든 성공하기까지 했지만, 이 책에서 그 성공에 대한 방정식 같은 건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어떤 분의 책 리뷰에서 처럼, 오히려 성공은 그들이 추구해오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에서 찾아왔고, 막판의 펍지의 성공을 크게 방해할 뻔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철저히 경영진의 시선(그것도 본인 스스로 나는 게임에 대해 잘 모른다고 선언한 분이 중심이 된)으로 정리 된 이 책은, 의심과는 달리 나름 곱씹어 볼 만한 내용들이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하지만 각 챕터 별로 있는 이른바 “장병규의 메시지”가 이 책에서 가장 쓸모없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개발자라면 경영진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볼 수 있을 것이고, 경영진이라면 일단 이들의 방법이 결과적으론 성공했지만, 의미적으로는 실패했다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이 책이 좋은 책이 될 수 없는 지점은 경영진의 선택이 개발 일선에서 미친 영향이나, 개발 자체의 난맥상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다시피 한 지점이겠지요. 게임 회사를 다루고 있지만 정작 게임 제작에 대한 내용은 그저 인상 평가에만 그치곤 합니다.

그러니 “돈 잘버는 게임 회사 = 게임 제작의 명가” 라는 이상한 공식이 띠지에 들어가도 이상한 점을 못 느꼈겠지요. 저 공식이라면 국내에서 게임 제작의 명가는 일단 NC와 넥슨이 가져가야 합당할 것입니다. …

한번 쯤은 읽어봐도 좋은 책 입니다. 의외로 머리를 끄덕이게 되는 부분도 분명 있거든요. 하지만 이 책을 경전 삼아 숭배하려는 사람을 만나거든 일단 경계부터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