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나믹스에 대한 못다한 이야기

게임 회사 이야기 Ep. 8 – 다이나믹스 편 (클릭 시 재생)

사실 다이나믹스에 대한 내 기억은 매우 단편적인 것만 남아 있었다. A-10 탱크 킬러 라던가, 시에라 온라인의 자회사 중 하나였다던가, 윌리 비미쉬의 모험이라던가 식의 제한적인 정보 뿐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어린 시절 무척 해보고 싶었지만 못해본 선망의 게임 목록 한 켠에 자리잡은 게임들을 만든 회사로 기억한다. 그저 선망하기만 한 이유는 단순했다. 이 게임들을 원할하게 실행 할 수 있는 사양의 컴퓨터를 당시 가지지 못했던 것.

데스 트랙 같은 어린 시절 추억의 게임이 다이나믹스의 작품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이번 영상 제작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러니깐 이름은 들어본 적은 있고, 알게모르게 작품들을 접했었지만, 기억 속에는 뭔지 모를 선망만 남아있던 게임 개발사.

이번 영상의 내용은 게임의 역사(원제: High Score! – the Illustrated History of Electronic Games, 제우미디어, 2002)의 다이나믹스에 대한 서술을 기초로 작업을 시작했다. 자료를 조사하면서 처음 알게 된 다이나믹스의 공동 창업자 데이먼 슬라이와 제프 터넬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플레이어가 흥미로운 선택의 기로에 서게 하는 주제를 좋아합니다.

데이먼 슬라이(다이나믹스 공동 창업자, 게임 디자이너)

마치 시드 마이어의 “게임은 흥미로운 선택의 연속”과 비슷한 결의 이야기를 한 데이먼 슬라이는 스텔라 7, A-10 탱크 킬러, 레드 바론, 태평양의 에이스들과 유럽의 에이스들의 제작자이다. 책에 남겨져 있는 그의 발언들은 지금의 게임 디자이너들에게도 유효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기 몇 가지 발언을 발췌해 본다.

새로운 제품을 만들 때는 두 가지 선택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첫 번째는 경쟁사의 제품보다 좀더 개선된 형태로 만들거나, 두 번째는 좀더 다른 형태로 만드는 선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통 후자 쪽이 시장에서의 반응이 더 좋았습니다.

F-16 같은 현대의 제트기들이 유선형의 아름다운 동체와 날개를 가지고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초음속 공중전을 벌인다면, A-10은 그와 정 반대입니다.

데이먼 슬라이
A-10 Tank Killer

게임 디자이너들이 중요시해야 할 것은 플레이어가 조종하게 될 탱크나 비행기가 아니라, 게임을 플레이하며 얻게 될 경험입니다.

아직까지의 컴퓨터 성능으로는 완벽하게 현실을 재구성 하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사실을 사실에 가깝게 재구성 하는 것이 가능 할 뿐입니다.

데이먼 슬라이

복엽기를 타고 적과 바짝 붙어 서로 얼굴을 마주 볼 수 있을 정도의 느린 속도로 전투를 벌인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경험입니다.

데이먼 슬라이

또 다른 공동 창업자였던 제프 터넬의 경우도 역시 게임 제작자로서의 그의 일생을 눈 여겨 볼 만 하다. 초창기 서바이벌 호러 장르를 개척한 게임인 프로젝트 파이어스타트 나, 창의적인 게임 플레이를 선보인 인크레더블 머신(국내 정발명 – 요절복통 기계)을 제작하고, 울트라 3D 핀볼, 트로피 배스 같은 좀 더 대중 지향적인 캐주얼 게임들을 선보임으로써 당시 매니아 시장의 성격이 점차 강해지던 PC 게임 시장의 확대를 꾀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제프 터넬의 경우에는 이후 꾸준히 게임을 개발하며 SNG 게임을 만들어 히트 시키기도 했다. 2017년 은퇴를 선언하고 게임계를 떠났다. 데이먼 슬라이는 유럽의 에이스들 제작 이후 게임계를 잠시 떠나 이후 새로운 게임사를 만들며 현역으로 복귀했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과거의 명성을 되살릴 만한 작품을 내지는 못했다. 만약 그가 은퇴 없이 게임을 계속 만들었다면 지금의 모습과는 좀 다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역시나 가정은 무의미 한 걸까?

어떻게 마이크로프로즈의 해적은 “시드 마이어의 해적”이 되었는가?

  • 덧(2020. 06. 14.): 해당 영상의 문제 부분이 편집되어 올라간 것을 확인 했습니다(오후 3:21)

어제, 게임 개발 비화 유감 이라는 글을 쓴 이후 올라온, 유명 유튜버의 게임 개발 비화 영상을 보고 시작하게 된 글.

사실 게임 회사 이야기 Ep. 2 마이크로프로즈 편(유튜브)을 만들 당시 “시드 마이어의 해적”에 왜 개발자 시드 마이어의 이름이 붙었는지에 대한 이유는 굳이 찾아보지 않음. 국내 자료들은 별별 내용들1이 있었기 때문에 애초에 다룰 생각 자체가 식어버림. 그저 시드 마이어의 이름을 단 첫 게임이 해적이었다는 것만 있으면 되었음.

어제 공개 된 문제의 게임 개발 비화 영상에서는 예의 ‘새로운 분야 도전에 대한 리스크 회피 및 책임 회피를 위해 시드 마이어의 이름을 쓰도록 공동 창업자인 빌 스텔리가 강요했다’ 라는 이야기를 차용함.

사실 이 이야기에 대해 의문이었던게, 당시 북미 게임계는 전통적으로 게임 디자이너의 이름을 패키지 전면에 내세우는게 거의 대부분이었음(마이크로프로즈가 오히려 독특한 경우로 이 회사는 해적 이전까지는 패키지에 게임 디자이너 이름을 넣진 않음). 오리진 시스템즈, 브로더번드 소프트웨어, 시에라 온라인의 게임 패키지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일정 시기 이후부터 게임 디자이너 이름이 패키지 전면에 표기 되어 있는 걸 확인 할 수 있음(각 링크는 해당 게임사 게임 패키지 영상임).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되는게, 게임이 망하면 회사 전체의 책임이지 어느 개인의 이름을 내세웠다고 그 책임이 오롯이 개인에게 가는 것이 아님. 어쨌든 의아했기에 인터넷 검색을 시작 함.

2013년 PC GAMER의 기사(2013. 6. 28.)에 따르면, 코타쿠의 기사를 인용. 애초의 아이디어는 유명한 헐리우드 영화 배우이자 게임광으로 알려진 로빈 윌리엄스의 제안으로 “시드 마이어의 해적”과, “시드 마이어의 문명”이 되었다는 빌 스텔리의 발언이 실려 있음.

“We were at dinner at a Software Publishers Association meeting, and [actor] Robin Williams was there,” longtime collaborator Bill Stealey says. “And he kept us in stitches for two hours. And he turns to me and says ‘Bill, you should put Sid’s name on a couple of these boxes, and promote him as the star.’ And that’s how Sid’s name got on Pirates, and Civilization.”

How Sid Meier became one of the most recognizable names in gaming, PC GAMER, June 28, 2013

원 출처인 코타쿠의 기사(2013. 6. 26) 에는 아에 시드 마이어의 회고도 같이 들어가 있음. 전문을 보면 ‘하기 싫은데 네 이름 걸고 만드는거면 봐줄께’ 같은 뉘양스로 보긴 어려움. 그것 보다는 ‘뭐? 그래? 그럼 네가 만든 게임들(비행 시뮬레이션 게임들)로 이미 유명하니 네 이름을 넣으면 어떨까?’에 가까워 보임.

“Bill said, ‘When’s my next flight simulator coming out?’ And I said, ‘I’m not doing a flight simulator; I’m doing a pirates game.’ He said, ‘Well that’s crazy, ‘cause people want your next flight simulator… Wait a minute. Put your name on it. Maybe if they liked your flight simulator games, they’ll recognize the name and buy this crazy pirates thing.’”

Sid Meier: The Father of Civilization, Kotaku, June 26, 2013

다시 한 번,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네 이름 넣고 실패하면 네가 책임져. 라고 복잡하게 갈 이유가 없음. 실패하면 네가 회사 나가. 라고 하면 되는 일임.

하지만 어제의 그 영상 덕분에 빌 스텔리는 군인 출신 겜알못 꼰대로 빠르게 전락하는 중이고. (…)


추가로, 시드 마이어의 문명 개발 당시 빌 스텔리가 문명 개발을 포기 시키기 위해 압력을 행사하고 개발자 한 명만을 넣어줬다. 식의 서술도 뭔가 미심쩍어서 찾아봤다.

내가 발견한 자료는 시드 마이어와 브루스 쉘리(레일로드 타이쿤, 문명,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개발자)가 GDC 2017에서 함께 발표한 내용에 대한 Ars Technica 의 기사(2017. 3. 04).

기사 내용에 따르면 경영진의 문명에 대한 우려는 분명 있었음. 다만 그건 첫번째 프로토타입에 대한 것이었다. 문명의 첫 프로토타입은 턴 방식이 아닌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심시티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 이었으며, 시드 마이어 스스로도 디자인 의도대로 돌 던 물건이 아니었다고 발언.

다만, 같이 프로토타입을 만들던 브루스 쉘리의 입장에서는 회사가 시드 마이어를 비행 시뮬레이션 개발로 빼가려는 술수로 보였다고 함. 시드 마이어는 쉘리는 아마 경영진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없었을 것이라는 식으로 이야기 함.


해당 영상의 뒷 부분은 아에 사실 관계부터가 엉망진창인데, 대표적인 것만 지적하자면.

  1. 마이크로프로즈는 시드마이어의 해적과 문명의 성공 이후 군사 시뮬레이션 분야만 파지 않았음. 경영,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X-COM 시리즈 등)을 비롯, 다크랜드 같은 걸출한 RPG와 각종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쳐 게임, 스포츠, 레이싱 게임, 교육용 게임 등을 개발하고 발매함.
  2. 마이크로프로즈의 몰락 이유는 갑작스러운 규모 확대 및 각종 신규 장르 게임의 부진, 무리한 해외 진출(유럽 지사 설립 등)로 인해 시작되었다고 보는 입장이 많은 편.
  3. 결국 이 상황에서 마이크로프로즈는 스펙트럼 홀로바이트에 인수 됨. 그리고 이 인수가 이뤄지는 시점에 빌 스텔리가 시드 마이어보다 먼저 일선에서 퇴진함.
  4. 회사는 이후에도 부침을 겪었고, 경영 합리화 결정에 따라 스펙트럼 홀로바이트 + 마이크로프로즈 = 마이크로프로즈 가 되는 시기에 뒤늦게 시드 마이어도 마이크로프로즈를 퇴사 함.
  5. 1993년 스팩트럼 홀로바이트 이후에도 꽤 많은 회사들에 팔리면서 계속적으로 핵심 개발 인력들이 구조조정으로 갈려나가는 상황이 발생함. 결국 2003년 인포그램즈 산하에 있을 때 스튜디오 폐쇄가 결정 됨.
  6. 2020년 마이크로프로즈의 부활이 알려짐. David Lagettie 에 의해 회사가 복각 중에 있으며, 빌 스텔리가 여기에 대해 홍보를 하는 형태로 기여 중임(The resurrection of MicroProse and return of “Wild Bill” Stealey, Gamesindustry.biz, May 6. 2020.).

  1. 성공한 개발자 시드 마이어의 명성을 위한 것 vs. 위험 분야 도전에 따른 위험 회피를 위한 것

게임 개발 비화 유감

게임의 구상부터 개발까지 완성에 걸린 기간만 7년, 완성된 게임을 보고도, 탐탁치 않아했던 임원들, “일단 발매는 하겠지만, 이런 게임이 잘 될리 없습니다.”

A 웹진, 2016년

정작 문제는 EA와 윌 라이트의 관계였다. EA입장에서는 거액을 주고 MAXIS의 대표 게임인 심시티의 가능성에 투자한 것이었고 심시티 게임의 핵심 개발자는 윌 라이트였다. 그런데 그 심시티의 핵심인 윌 라이트가 심시티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거액을 주고 산 핵심 인물이 지금 딴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B 웹진, 2019년

EA에 맥시스를 매각한 이후 윌 라이트는 드디어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이제 경영은 EA의 몫이었고, 윌 라이트는 지난 몇 년 동안 자신을 짓눌러오던 경영 문제에서 해방되어 게임 개발에만 집중 할 수 있었다. EA도 우호적이었다. 윌 라이트가 필요하다고 말만 한다면 컴퓨터부터 인력까지 뭐든지 충원해 줄 기세였다.

C 웹진, 2018년

타고난 승부사적 기질을 가지고 있는 윌 라이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건 다 필요없고, 프로그래머 한 명만 붙여달라고 회사에 요구했다. EA는 귀찮다는 듯 적당한 프로그래머 한 명을 뽑아 프로젝트에 배정해 주었다. 윌 라이트에게 이건 굴욕이었다. 그는 [심시티]를 개발한 사람이 아닌가?

D 웹진, 2015년

위의 영상을 준비하면서 가장 난감했던 문제 중 하나. 심시티와 심즈 시리즈의 개발자인 윌 라이트는 말 그대로 게임사에 한 획을 그은 위대한 인물 중 하나이다 보니 국내에도 그와 그가 몸 담았던 맥시스 소프트웨어에 대한 글이 매우 많다.

그런데 찬찬히 읽어보면 같은 시점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도 불구하고 각 서술자 마다 다른 분위기, 심지어는 객관적인 사실 마저도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1가 있다.

게임 개발 비화나 게임사를 이야기하는데에 대한 어려움은 이미 예전에도 몹시 투덜거린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너무 심했다. 이번 영상은 다른 영상에 비해 준비 과정이 매우 어려웠었는데,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된 건 사건의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국내의 기사들은 위의 예시를 보듯, 각 저자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래서는 뭘 선택하든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그리고 대부분 내용의 출처에 대한 이야기는 언급이 없다).

결국 내가 내린 해결책은 당사자 입에서 나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서술하는 것이었다. 다행이 관련 자료는 찾기 쉬웠는데 맥시스 초기에 대한 이야기는 제프 브라운의 한 강연 영상(2009년)을, 그리고 심즈에 대한 이야기는 주로 윌 라이트의 여러 인터뷰 자료들을 토대로 삼았다2

게임 개발 비화를 쓸 때,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글의 재미를 주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꾸며내는 것 역시 중요한 능력 중 하나이기도 하고, 내 스스로는 그런 능력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에 매일 고민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좀 너무하다. 그것도 전문성과 사실에 기반한 이야기를 풀어야 하는 게임 전문지에서 같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기본 사실마저 달라지는 행태는 좀 위험하다. 만약 리니지 1의 개발 비화를 이야기 하면서 상상에 근거한 양념을 함부로 칠 수 있을까? 키보드에 손을 올리기 전에 NC 법무팀이 먼저 떠오른다면, 해외의 게임 개발 비화를 이야기 할 때도 마찬가지어야 되는거 아닐까?

문제는 이런 이야기들이 확대 재생산 되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각종 블로그 글이나 유튜브 영상 등을 통해 개인이 생산한 콘텐츠에서도 똑같은 난리판이 벌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기초 자료로 어떤 웹진 기사 하나 집어놓고 작업을 한게 너무 눈에 보이거든.

관점에 따라 사건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는 있다. 그리고 방대한 자료들 중 참고한 소스에 따라서 사실 관계도 달라질 수도 있으며, 당사자의 인터뷰라고 해서 무조건 신뢰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번 영상을 준비하면서 찾아 본 내용들은 이런 수준의 이야기를 한참 벗어난 듯 하다.

이건 좀 아니지.


  1. EA가 출시를 반대했다. EA가 출시에 반대했지만 신임 총괄 매니저의 드라이브로 출시했다. EA는 심즈에 적극적이었다 등

  2. 링크 자료는 제일 먼저 참조했던 가마수트라에 실린 윌 라이트 인터뷰(2011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