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만든다는 것

상업적 성공작,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품 같은 걸 만들어본 적은 없다. 그렇고 그런 평범한 게임 제작 경험이 여러번. 발매에 실패한 게임 몇 번,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던 습작 게임 제작이 한 두번. 게임 개발자로 성공하지 않은 사람이 게임을 만든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는게 같잖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자라기 보다는 자신을 위해 정리하는 글로 시작하려 한다.

꽤 오래전 게임 제작을 동경하던 시절 부터, 연차가 어느정도 쌓이는 때 까지, 게임을 만든다는 것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때는 왜 게임을 만들고 싶어했을까?

아마추어 기획자 활동을 할 때, 주변의 대부분의 지인들은 RPG를 만들고 싶어했지만, 나는 전략 게임이나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을 좋아하고 만들고 싶어했다. 상황을 예측하고, 통제하고, 지시를 내리고, 그것에 대한 결과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 아이러니 한 건, 실제 생활이나 성격도 누군가를 리드하는 성격이었느냐? 하면 오히려 정 반대였던 것 같다.

남들과는 다른 선호지만, “나도 저런거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어” 란 생각은 같았다. 지금도 아쉬운건 그저 상상을 정리하는 아마추어 기획자 포지션이 아니라 중간에 좌절하더라도 직접 개발을 해봤어야 한다는 점이다.

어쨌든. 이후 정식으로 게임 개발을 나섰던 시점에도 “나도 저런거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어”란 생각은 변하지는 않았다. 다만 문제는 그 만들고 싶다는게 주류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다는 것. 남들과 다른 선호는 엉뚱한 형태로 작동을 했는데 “나도 저런거 한 번 만들어 보고 싶다” 가 “나는 남들이랑 다른걸 만들어 보고 싶다”가 된 것이다.

꽤 오랫동안 남들과 다른 것을 만들 기회는 없었다. 그리고 어쩌다 큰 맘 먹고 벌인 일은 분명 남들이랑 다른 것이었다. 그 큰 맘 먹고 벌인 일에 대해서는 아직 내가 함부로 이야기 할 일은 아니므로 넘어간다.

요즘 이런 저런 게임을 하고, 이런 저런 게임을 만드는 것을 생각해 보고 있다. 하도 생각이 많아지다 보니 게임을 만든다는게 뭘까? 라는 물음이 자연스럽게 들더라. 나도 저런거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어, 남들과 다른 걸 만들어보고 싶어. 라는 건 동기는 될 수 있지만, 당위는 될 수는 없다. 대체 뭘 위해 게임을 만들려고 했지? 게임을 만들어서 무엇을 하려 했던걸까?

최근 게임을 하면서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은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전달하는 경험에 대하여다. 그 경험이 좋고 나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게임 개발자 의도한 경험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플레이어에게 전달하고 있느냐에 대한 것.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경험)를 얼마나 잘 표현하는가다.

결국 게임을 만든다는 것은 남에 이야기를 하는 것과 같다. 글은 언어를 통해, 영화는 영상과 대사를 통해 독자, 관객에게 이야기 하듯 게임 역시 게임 플레이 경험을 통해 플레이어에게 이야기 하는 것 아닐까?

좋은 게임 플레이 경험은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생각을 정리해 본 결과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 되는 것 같다.

  1. 어떤 이야기(경험)를 전달할 지에 대한 명확한 목표.
  2. 이야기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게임 디자인.
  3.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끊임없는 도전.

자. 그럼. 정리는 끝났으니, 다음 게임을 만들어보자.

자동사냥 칼럼 모음

몇 년전 모 매체의 기고 의뢰로 자동사냥에 대해 글을 쓴 이후, 자동사냥과 관련한 기사나 칼럼이 나오면 유심히 보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이 주제의 글이 자주 눈에 띄었다. 심지어 설 연휴 시작인 오늘(2020. 01. 24.)도 게임 웹진을 통해 관련 칼럼이 올라왔다. 그만큼 해묵은 떡밥이란 이야기겠지.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관점에서 자동사냥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서로 다른 걱정, 해법을 보니 이 주제의 글을 한 번에 모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 정리해 본다.

온라인 게임 자동진행 시스템 ‘논란’
디지털타임스 – 2010.05.23.

스마트폰 보급이 아직 체 시작도 되기 전, PC 온라인 게임이 시장을 주도하던 시절에도 자동진행 시스템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당시 게임물등급위원회(현 게임물관리위원회)에서 자동진행 시스템을 유료화 해서 팔 경우 ‘사행성’ 판정을 내린 것.

실행과 종료뿐? 자동 시스템은 절대악인가?
한경 게임톡 – 2015. 05. 11.

위에 언급한 매체 의뢰로 쓴 자동 시스템에 대한 글. 기억하기로는 자동 성장형 RPG 게임 뿐만 아니라 리듬 액션 장르에서도 자동 시스템이 하나 둘 도입 되기 시작하는 시점에 썼던 걸로 기억한다. 진짜 문제는 자동 사냥의 도입이 문제가 아니라, 자동 시스템이 게임 경험에 부합하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라 생각했다. 현재도 이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산소미포함(2): 자동화의 주인은 누구여야 하는가?
메일경제 – 2019.09.04.

PC 생존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 산소 미포함 Oxygen Not Included 플레이 리뷰. 게임에서 추구하는 자동화 시스템에 대해 분석하고, 이를 독창적인 게임 디자인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게임 디자인 레벨업 #22 게임 속 자동 플레이의 역사
NC Soft 블로그 – 2019.12.26.

자동 플레이 시스템의 역사적인 관점에서 과거와 현재를 분석한 글. 현재의 모바일 RPG가 아닌 전체 게임 역사에서 도입된 자동 플레이 시스템이 어떻게 사용되었고, 사용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분석했다.

[기자수첩] 우리는 ‘자동사냥’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인벤 – 2020. 01. 24.

게임을 경험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플레이어의 직접적인 개입이 자동사냥으로 인해 사라지는 것, 그리고 천편일률적인 게임 시스템의 도입을 경계하고 있다.

게임 디자인 프로토타이핑

프로토타이핑은 말 그대로 제품이 생각한 대로 동작을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제품 Prototype 을 만들고 검증하는 기법이다. 게임의 경우 주로 게임 디자인,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UI / UX 를 확정하기 위해 프로토타이핑을 진행한다1.

프로토타이핑은 불확실한 부분을 빠르게, 직접 확인해보고 의사 결정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단순히 머릿속에서 그럴것이라고 추측하는 것 보다 더 직관적이고 확실한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에 프로젝트에서 프로토타이핑은 매우 자주 사용된다.

프로토타이핑을 시작하기 전

저변에 깔려 있는 프로토타이핑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프로토타이핑이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 있어 필수적인 통과의례라 생각하는 것이다.2

프로토타이핑은 어디까지나 가설 검증을 위한 수 많은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이를 쓸지 말지의 여부는 가설이 프로토타이핑으로 검증이 가능하냐에 따라 결정된다.

또 한가지, 프로토타이핑이 프로젝트의 전부인 것 처럼 변질되는 경우가 심심찮게 발생한다. 프로토타이핑은 프로젝트가 아니다. 프로젝트 완성을 위한 여러 과정 중 작은 일부 일 뿐이다.

프로토타이핑 중 언제라도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단 생각이 든다면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

프로토타이핑 목표 – 가설 설정

프로토타이핑의 목표 설정은 가설 설정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가설이라는 단어가 거창하게 들리지만, 게임을 만들면서 스스로 드는 궁금함을 정리하는 단순한 작업이다. 게임 프토로타이핑에서 설정하게 되는 가설의 예는 이런 것이다.

  • 신규 시스템이 사람들에게 의도한 대로 동작할까?
  • 디자인한 메커니즘대로 사람들이 플레이를 할까?
  • 이 구간의 플레이가 사람들이 임팩트를 줄 수 있을까?
  • 신규 시스템이 자연스러운 게임 플레이에 도움이 될까?

(사실 사회과학조사방법론을 적용한다면 …3)

사실 프로토타이핑은 과학적 방법론을 바탕으로 한 오래된 기법이다

프로토타이핑의 가설은 검증 가능한, 최대한 구체적인 것으로 세울 것을 권장한다. 프로토타이핑 기법의 가장 큰 장점은 프로덕트 Product 제작 보다 매우 빠른 제작을 통한 제품 가치 확인에 있다. 하지만 검증이 불가능한 애매한(그래서 매우 범위가 큰) 가설은 프로토타입을 순식간에 프로덕트로 만들어 가장 큰 장점인 빠른 검증을 없애버린다.

가설 설정을 완료 했다면 아래의 질문에 스스로 대답해 보자. 만약 하나라도 아니오가 있다면 굳이 그 가설을 프로토타이핑을 이용해 검증할 필요는 없다.

  1. 수립한 가설은 검증이 필요한 가설인가 ? 혹은, 이미 검증된 가설을 또 검증하기 위해 프로토타이핑 하는건가?
  2. 이미 다른 게임에서 검증이 끝난 가설은 아닌가?
  3.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훨씬 더 쉬운 방법(자료 조사, 분석, 시뮬레이션 등)이 있는가?

프로토타이핑 – 프로토타입 제작

프로토타이핑 목표를 정했으면, 프로토타입을 제작 단계로 넘어간다. 이 때 프로토타입을 제작 할 때 어떤 툴을 사용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툴을 선택 할 때 아래의 것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좋은 툴을 선택 할 수 있을 것이다.

  1. 가설 검증에 필요한 기능을 만들기 위한 필수 기능을 갖췄는가?
  2. 사용에 충분히 익숙한가? 혹은 사용법을 익히기 매우 쉬운가?
  3. 프로토타입을 타인과 공유하고 사용하기 쉬운가?

여기에서는 게임 디자이너가 선택할 수 있는 프로토타이핑 툴의 예시를 몇 가지 들어본다.

종이, 연필, 주사위

종이, 연필, 주사위는 게임 규칙을 검증하기 위한 프로토타이핑을 할 때 가장 유용하고 편리한 수단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지금 당장 책상 위에 굴러다니는 재료들을 모아 생각했던 게임 규칙을 보드 게임으로 구현하면 끝이다.

이 툴은 다른 툴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빠른 구현을 가능하게 한다. 누구나가 이를 쉽게 다룰수 있는데다 수정 편집이 압도적으로 용이하기 때문이다(실패한 종이를 구겨 버리고 새 종이를 꺼내면 된다).

게임 에디터

몇몇 PC 패키지 게임들은 MOD 툴을 자체적으로 제공한다. 대표적인 예로 스타크래프트 2 편집기를 들 수 있다.

당장 근사하게 움직이는 무언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만드는 게임의 장르와 방향성이 같다면 적극 활용해 보도록 하자.

다만 가능한 프로토타입의 범위가 한정적이고, 에디터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점은 유념하자.

구글 설문지 도구

게임 디자이너, 기획자라면 문서도구 사용에 매우 익숙할 것이다. 그 중 구글 설문지 도구는 대화 선택형 이벤트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면 사용해 볼 만 하다.

구글 설문지 도구는 간단한 선택 분기를 제공하며 조금의 고생을 한다면 이벤트 신이나 지문 선택형 어드벤쳐 게임을 간단하게 구현해 볼 수 있다.

단점은 게임 제작을 위한 툴이 아니며 그런 방면으로는 기능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검증 가능한 영역 또한 제한적이라는 것 뿐이다.

범용 게임 엔진 / 게임 제작 툴

본인이 사용에 익숙해서 프로타이핑 구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을 수 있다면 범용 게임 엔진을 사용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래픽 에셋 등을 이용해 괜찮은 퀄리티의 프로토타이핑을 빠르게 뽑아내는 건 제작자 / 팀의 사기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다만, 괜찮은 퀄리티 라는 함정에 빠지면 프로토타입이 프로덕트가 되는 약속된 멸망의 길로 가게 된다. 범용 게임 엔진을 통한 프로토타이핑은 몽마처럼 계속 개발자를 유혹할 것이다.

UI / UX 프로토타이핑 툴

게임의 UI / UX를 디자인하고 검증하기 위해 오늘도 많은 기획자들은 MS 파워포인트를 잡고 끙끙거리고 있을 것이다. 다행이 우리의 이웃인 IT 업계 개발자들은 자신들을 위한 UI / UX 전용 프로토타이핑 툴을 여럿 만들었다.

특별한 조작계를 적용하지 않는 한, 게임의 UI / UX 를 검증하는데 이들 툴은 매우 유용하고, 무엇보다 편리하다. 파워포인트에서 프로토타이핑 만을 위한 기능을 떼어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생산성은 당연히 파워포인트 보다 월등하다.

단점? 할 수 있는 건 UI / UX 검증이라는 것 정도?

프로토타입 테스트 – 가설 검증

프로토타입 구현이 완료 된 다음 가설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한 테스트를 거치게 된다. 전문적인 FQA 팀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이 과정은 이른바 개밥 먹기 과정이 될 수 밖에 없다. 순전히 자신 또는 같이 개발한 동료들의 감을 믿어야만 한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현실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모습이다.

가설을 구체적으로 설정했을 때의 장점은 가설 검증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가설이 구체적이고 명확할 수록 답을 객관적으로 내기 수월하다.

가설 검증을 할 때의 유의 사항으로 알려주고 싶은 것은 바로 실패에 대비하라 이다. 많은 경우 프로토타입 결과물은 생각지 못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그런 결과에 실망스러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 당연한 일이다. 프로토타이핑의 장점은 한번에 성공하는 것이 아닌 문제점을 조기에 발견해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잔소리 – 유의사항

  1. 속도는 프로토타이핑의 장점이자 프로토타이핑의 알파와 오메가이다. 프로토타이핑 과정이 느려진다면 100% 뭔가 잘못 되었다는 신호다.
  2. 프로토타입은 프로토타입일 뿐이다. 언제든 용도 폐기 할 생각을 하고 많은 정성을 들이지 말도록 한다.
  3. 프로토타입 제작을 절대 외주 주지 마라. 제품 핵심 가치를 알고 있는 개발진이 직접 구현하고 평가해야 한다. 외주를 주면 핵심인 속도를 까먹으며, 제대로 된 검증을 할 수 없다. – 무엇보다 프로토타입 제작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을 싹 다 날려먹는다.
  4. 게임 시스템을 검증할 때, 프로토타입에서 시스템을 계속 추가하는 식으로 개선이 진행되고 있다면 일단 작업을 멈추고 전체 게임을 다시 한 번 점검한다. 그리고 각 시스템의 세부 규칙을 검증할 것이 아니라 전체흐름을 먼저 검증하길 권고한다4

  1. Art 나 Sound의 컨셉 디자인 과정 역시 넓은 의미의 프로토타이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 반대로 프로토타이핑은 무조건 필요 없다 생각하는 것도 많은 오해 중 하나이다.

  3. 가설 설정은 “신규 시스템은 사람들에게 의도한 대로 동작한다” 식으로 서술 될 것이다.

  4. 개인적으로 이 작업을 실패해서 전체 게임이 누더기가 되었다. 이 경험은 매우 불쾌한 결과를 가져왔던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