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컴플렉스닷넷 2020년 결산

2019년에 이어, 2020년 올해도 결산을.

2020년 블로그 통계

정리 및 분석

2020년은 정말 많은 글을 썼는데, 글 수가 늘어난 대신 글의 밀도는 줄어든 편. 글 수가 증가함에 따라 페이지 뷰와 방문자 수가 증가하긴 했는데, 늘어난 글 수 보다 페이지 뷰와 방문자 수가 더 늘어난 건 개인적으로는 고무적인 일이다.

여전히 리퍼러는 페이스북, 트위터, 그리고 검색 엔진이 주류. 구글의 경우는 압도적이라고 할 만큼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월별로 보자면 올해 1월 이후 꾸준히 증가세를 보였고, 6월 정점을 찍은 후, 급격한 감소세를 보이는데, 이건 6월 말 취업에 따른 이후 포스팅이 띄엄띄엄 있었던 것과 관계가 깊다.

올해는 개인 습작 용도 작품을 두 개나 발표했고, 결국 그 중 하나인 올해의 게임 시뮬레이터 페이지가 최고의 페이지 뷰를 차지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유튜브

하트컴플렉스닷넷의 유튜브 채널 홈메이드 스튜디오는 2020년 3월 부터 활동을 시작하여 총 조회수 1.6만, 시청 시간 1천 시간, 구독자 216명을 달성. 주요 컨텐츠는 게임 회사의 흥망성쇠를 다룬 역사물(?) 게임 회사 이야기 시리즈로 지금까지 총 11편의 시리즈를 만들었다. 이 컨텐츠 역시 주업이 생긴 이후로는 업데이트가 뜸해지긴 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제작을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 중이다.

2021년 예상

예상이라기 보다는, 꾸준히 글 쓰고, 꾸준히 영상 컨텐츠 만들고, 꾸준히 개인 프로젝트 진행을 하는 삶을 유지하고 싶긴 하다. 경제적인 문제가 풀리고 나니 마음의 여유는 생겼지만 반대로 시간 여유는 사라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어쨌든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게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된 거다. 조금씩 전진해야지.

그리고,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블로그와 유튜브를 방문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사랑합니다.

어떻게 마이크로프로즈의 해적은 “시드 마이어의 해적”이 되었는가?

  • 덧(2020. 06. 14.): 해당 영상의 문제 부분이 편집되어 올라간 것을 확인 했습니다(오후 3:21)

어제, 게임 개발 비화 유감 이라는 글을 쓴 이후 올라온, 유명 유튜버의 게임 개발 비화 영상을 보고 시작하게 된 글.

사실 게임 회사 이야기 Ep. 2 마이크로프로즈 편(유튜브)을 만들 당시 “시드 마이어의 해적”에 왜 개발자 시드 마이어의 이름이 붙었는지에 대한 이유는 굳이 찾아보지 않음. 국내 자료들은 별별 내용들1이 있었기 때문에 애초에 다룰 생각 자체가 식어버림. 그저 시드 마이어의 이름을 단 첫 게임이 해적이었다는 것만 있으면 되었음.

어제 공개 된 문제의 게임 개발 비화 영상에서는 예의 ‘새로운 분야 도전에 대한 리스크 회피 및 책임 회피를 위해 시드 마이어의 이름을 쓰도록 공동 창업자인 빌 스텔리가 강요했다’ 라는 이야기를 차용함.

사실 이 이야기에 대해 의문이었던게, 당시 북미 게임계는 전통적으로 게임 디자이너의 이름을 패키지 전면에 내세우는게 거의 대부분이었음(마이크로프로즈가 오히려 독특한 경우로 이 회사는 해적 이전까지는 패키지에 게임 디자이너 이름을 넣진 않음). 오리진 시스템즈, 브로더번드 소프트웨어, 시에라 온라인의 게임 패키지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일정 시기 이후부터 게임 디자이너 이름이 패키지 전면에 표기 되어 있는 걸 확인 할 수 있음(각 링크는 해당 게임사 게임 패키지 영상임).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되는게, 게임이 망하면 회사 전체의 책임이지 어느 개인의 이름을 내세웠다고 그 책임이 오롯이 개인에게 가는 것이 아님. 어쨌든 의아했기에 인터넷 검색을 시작 함.

2013년 PC GAMER의 기사(2013. 6. 28.)에 따르면, 코타쿠의 기사를 인용. 애초의 아이디어는 유명한 헐리우드 영화 배우이자 게임광으로 알려진 로빈 윌리엄스의 제안으로 “시드 마이어의 해적”과, “시드 마이어의 문명”이 되었다는 빌 스텔리의 발언이 실려 있음.

“We were at dinner at a Software Publishers Association meeting, and [actor] Robin Williams was there,” longtime collaborator Bill Stealey says. “And he kept us in stitches for two hours. And he turns to me and says ‘Bill, you should put Sid’s name on a couple of these boxes, and promote him as the star.’ And that’s how Sid’s name got on Pirates, and Civilization.”

How Sid Meier became one of the most recognizable names in gaming, PC GAMER, June 28, 2013

원 출처인 코타쿠의 기사(2013. 6. 26) 에는 아에 시드 마이어의 회고도 같이 들어가 있음. 전문을 보면 ‘하기 싫은데 네 이름 걸고 만드는거면 봐줄께’ 같은 뉘양스로 보긴 어려움. 그것 보다는 ‘뭐? 그래? 그럼 네가 만든 게임들(비행 시뮬레이션 게임들)로 이미 유명하니 네 이름을 넣으면 어떨까?’에 가까워 보임.

“Bill said, ‘When’s my next flight simulator coming out?’ And I said, ‘I’m not doing a flight simulator; I’m doing a pirates game.’ He said, ‘Well that’s crazy, ‘cause people want your next flight simulator… Wait a minute. Put your name on it. Maybe if they liked your flight simulator games, they’ll recognize the name and buy this crazy pirates thing.’”

Sid Meier: The Father of Civilization, Kotaku, June 26, 2013

다시 한 번,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네 이름 넣고 실패하면 네가 책임져. 라고 복잡하게 갈 이유가 없음. 실패하면 네가 회사 나가. 라고 하면 되는 일임.

하지만 어제의 그 영상 덕분에 빌 스텔리는 군인 출신 겜알못 꼰대로 빠르게 전락하는 중이고. (…)


추가로, 시드 마이어의 문명 개발 당시 빌 스텔리가 문명 개발을 포기 시키기 위해 압력을 행사하고 개발자 한 명만을 넣어줬다. 식의 서술도 뭔가 미심쩍어서 찾아봤다.

내가 발견한 자료는 시드 마이어와 브루스 쉘리(레일로드 타이쿤, 문명,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개발자)가 GDC 2017에서 함께 발표한 내용에 대한 Ars Technica 의 기사(2017. 3. 04).

기사 내용에 따르면 경영진의 문명에 대한 우려는 분명 있었음. 다만 그건 첫번째 프로토타입에 대한 것이었다. 문명의 첫 프로토타입은 턴 방식이 아닌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심시티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 이었으며, 시드 마이어 스스로도 디자인 의도대로 돌 던 물건이 아니었다고 발언.

다만, 같이 프로토타입을 만들던 브루스 쉘리의 입장에서는 회사가 시드 마이어를 비행 시뮬레이션 개발로 빼가려는 술수로 보였다고 함. 시드 마이어는 쉘리는 아마 경영진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없었을 것이라는 식으로 이야기 함.


해당 영상의 뒷 부분은 아에 사실 관계부터가 엉망진창인데, 대표적인 것만 지적하자면.

  1. 마이크로프로즈는 시드마이어의 해적과 문명의 성공 이후 군사 시뮬레이션 분야만 파지 않았음. 경영,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X-COM 시리즈 등)을 비롯, 다크랜드 같은 걸출한 RPG와 각종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쳐 게임, 스포츠, 레이싱 게임, 교육용 게임 등을 개발하고 발매함.
  2. 마이크로프로즈의 몰락 이유는 갑작스러운 규모 확대 및 각종 신규 장르 게임의 부진, 무리한 해외 진출(유럽 지사 설립 등)로 인해 시작되었다고 보는 입장이 많은 편.
  3. 결국 이 상황에서 마이크로프로즈는 스펙트럼 홀로바이트에 인수 됨. 그리고 이 인수가 이뤄지는 시점에 빌 스텔리가 시드 마이어보다 먼저 일선에서 퇴진함.
  4. 회사는 이후에도 부침을 겪었고, 경영 합리화 결정에 따라 스펙트럼 홀로바이트 + 마이크로프로즈 = 마이크로프로즈 가 되는 시기에 뒤늦게 시드 마이어도 마이크로프로즈를 퇴사 함.
  5. 1993년 스팩트럼 홀로바이트 이후에도 꽤 많은 회사들에 팔리면서 계속적으로 핵심 개발 인력들이 구조조정으로 갈려나가는 상황이 발생함. 결국 2003년 인포그램즈 산하에 있을 때 스튜디오 폐쇄가 결정 됨.
  6. 2020년 마이크로프로즈의 부활이 알려짐. David Lagettie 에 의해 회사가 복각 중에 있으며, 빌 스텔리가 여기에 대해 홍보를 하는 형태로 기여 중임(The resurrection of MicroProse and return of “Wild Bill” Stealey, Gamesindustry.biz, May 6. 2020.).

  1. 성공한 개발자 시드 마이어의 명성을 위한 것 vs. 위험 분야 도전에 따른 위험 회피를 위한 것

EA는 왜 웨스트우드 스튜디오를 버렸는가?

하지만 버진 산하에서의 웨스트우드 스튜디오는 오리지널 프렌차이즈를 만들고 성공시키는데 정말 타고난 회사였다는 걸 생각한다면 EA 체계 하에서의 웨스트우드의 행보는 의외다. 게다가 합병 초기 독립적인 개발 분위기가 유지되었다는 위 인터뷰 내용을 고려한다면 이런 의문은 타당하다. “웨스트우드 스튜디오 폐쇄는 오롯이 EA 혼자만의 잘못인가?”

웨스트우드 스튜디오의 시작과 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2008년 D.I.C.E. 서밋에서 당시 EA의 회장이었던 존 리치티엘로 John Riccitiello 는 웨스트우드 스튜디오, 오리진 시스템즈의 인수 합병 문제는 창의력이 생명인 비디오 게임 업계에서 획일적인 기업 문화를 적용하려 든 잘못된 사례라는 자기 반성적인 발표를 한다1

몇몇 인터뷰2에서 웨스트우드는 어느 정도 독립적인 개발 권한과 회사의 개발 문화를 지켜내고 있던 것으로 보여진다. 2003년의 상황을 갑작스러운 빈카운팅의 역습이라는 뉘양스3의 발언은 어떻게보면 좀 모순적이다.

웨스트우드의 모든 출시작을 확인해 보자

위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EA가 웨스트우드를 사들인 1998년 부터 스튜디오 통폐합까지(2003년)의 출시작들을 보면 신규 프렌차이즈는 거의 없다. 대부분 EA가 눈여겨 본 실시간 전략 게임 프렌차이즈(듄, C&C)의 후속작 뿐이다 – 참고로 Nox 는 웨스트우드 스튜디오의 이름으로 나오긴 했지만, 버진 산하의 Burst 가 EA에 매각 시 Westwood Pacific 되면서 만든 게임이다4.

인터뷰에는 나오지 않은 EA의 더 큰 암묵적인 압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버진 산하에서의 웨스트우드 스튜디오는 오리지널 프렌차이즈를 만들고 성공시키는데 정말 타고난 회사였다는 걸 생각한다면 EA 체계 하에서의 웨스트우드의 행보는 의외다. 게다가 합병 초기 독립적인 개발 분위기가 유지되었다는 위 인터뷰 내용을 고려한다면 이런 의문은 타당하다. “웨스트우드 스튜디오 폐쇄는 오롯이 EA 혼자만의 잘못인가?”

2008년 존 리치티엘로의 발언은 그가 EA의 회장에 취임한지 1년 뒤에 나온 이야기다. 그가 1997년 부터 2004년까지 EA의 최고 운영 책임자 COO Chief Operating Officer 로 재직하고 있었으니 그의 발언은 분명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가 2013년 EA의 회장직에서 물러나게 된 이유가 실적 문제 때문이었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 아닐까.

p.s. 여담이지만 의외로 해외는 EA = Eat All 이란 농담을 잘 안쓰는 것 같다. 구글 검색 결과에는 한국 쪽 결과만 잡히더라.


  1. EA “우리가 웨스트우드를 망쳤다”, 디스이즈게임, 2008. 20. 11

  2. Joe Bostic(Westwood Studios) Interview, Arcade-Attack, 2018. 08. 31

  3. The Westwood of 2003 however, was very different. Westwood had eventually succumbed to the corporate “every game must be a big hit” mentality and that affected the size of the projects as well as the internal culture. – 하지만, 2003년의 웨스트우드는 매우 달랐다. 웨스트우드는 결국 “모든 게임은 반드시 큰 성공을 거두어야 한다”는 기업의 사고방식에 굴복했고 이는 프로젝트의 규모와 내부 문화에 영향을 미쳤다.(출처)

  4. 이후 이 스튜디오는 EA Pacific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