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네가 하고 있는 것은 프로토타이핑이 아니란다

게임 개발의 프리 프로덕션 Pre-Production 단계에서 프로토타이핑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젠 다들 알고 있는 눈치이긴 한데, 아직도 여러 경우를 살펴보면 프로토타이핑을 실수 혹은 고의로 오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프로토타이핑으로 검증할 목표를 정확하게 잡지 않거나, 그저 개발의 필수적인 단계 Step 으로 여겨 그저 프로토타이핑을 흉내 내는 경우다. 그러니깐 이런 거다.

  1. 초기 컨셉이 잡혔으니, 이제 프로토타이핑을 해야지?
  2. (빠른 반복, 확인, 검증 과정 없이) 자, 프로토타이핑을 마쳤으니 이제 실 개발을 들어가자!

사실 이 정도는 귀여운 편이다. 프로토타이핑을 통해 실 제품의 모든 것을 검증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목표를 설정하고 프로토타이핑에 각종 디자인, 리소스, 비즈니스 모델 등을 붙여서 사실상 실제품을 만든다. 가장 최근에 본 사례 중 하나는 위와 같이 사실상 출시 스펙으로 십수 명의 인력이 프로토타이핑 제작에 1년을 들이고는 (프로토타입이라는 이유로) 폐기해버린 것이었다. 거기에 들어간 시간, 돈, 그 밖에 여러 자원을 생각해보면 제정신인가 싶을 정도.

프로토타이핑 그까짓 것 대충하면 어때 같은 이야길 할 수도 있겠지만, 아에 프로토타이핑을 건너뛸 때 보다 더 큰 손해를 끼친다는 것이 문제다.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을 왜 한단 말인가? – 물론 아예 프로토타이핑 = 실 제작으로 쓰는 경우라면 좀 다른 문제긴 하지만.

실제로 현재 진행 중인 개발 단계가 프로토타이핑인가 의심스럽다면 아래의 체크리스트를 확인해 보자. 하나라도 해당한다면 당장 프로토타이핑을 중단하고 원점에서 재고하기 바란다.

  • 프로토타이핑으로 검증하고자 하는 항목과 이를 위한 측정 방법이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 전체 프로토타이핑 기간은 전체 프로젝트 기간의 1/10 이상 잡혀 있다.
  • 프로토타입 1회 제작 기간이 1주일을 훌쩍 넘긴다.
  • 프로토타입에서 제작하는 범위가 초기 컨셉의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 프로토타입 제작에 대규모의 인원이 투입되어 있다.
  • 실제 개발에 사용할 툴 / 엔진을 프로토타입 제작에 사용 중이다.

덧: 게임 프로토타이핑에 대한 글은 여기를 참조하기 바란다.

2020 대한민국 게임대상 투표에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사실 올해의 게임 시뮬레이터 같은 것을 만들 때 당시만 해도, 제가 지금 이런 이야길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

코로나 시국이지만 2020 대한민국 게임대상의 레이스가 시작 되었습니다. 얼마 전 후보작이 발표 되었고 연례행사에 붙는 의례적인 평가 처럼 ‘대한민국 게임 다 죽었네’, ‘그들만의 잔치네’ 같은 국내 게임 매니아들의 비판적인 의견이 관련 뉴스의 댓글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2020 대한민국 게임대상 본상 후보 목록 (출처)

대한민국의 대표 게임을 선정한다는 대한민국 게임 대상은 그 취지와는 다르게 뭔가 ‘그들만의 잔치’ 같은 인상을 게이머들에게 준 지는 오래입니다. 사실 개발자들 사이에서도 이 상을 그렇게 높게 평가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국내의 게임 제작 수준과 작품 수준이 비약적으로 발전을 했다고는 하지만, 몇몇 장르에 편중되어 있고, 해외에서 까지 인정을 받은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는 점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와, 정부(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행사의 한계란 것 때문에 이 상의 이미지 개선은 요원합니다. (어쩌겠습니까. 정부가 나서서 해외 게임에 막 대상을 줄 수는 없지 않겠어요. ?)

그래도 올해는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여전히 주류 모바일 RPG 게임들이 리스트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만, 인디 게임 팀 파이드 파이퍼스의 PC 역사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플레비 퀘스트: 더 크루세이즈와 라인게임즈의 콘솔 어드벤쳐 게임 베리드 스타즈가 후보에 속해 있는 상황이지요(그밖에도 여러 새로운 시도를 통해 달라지기 위한 노력 중인 작품들도 후보에 포함 되어 있습니다).

본상 후보작은 심사위원의 심사 뿐만 아니라 20%의 네티즌 투표 결과가 점수에 반영됩니다. 비록 그들만의 잔치이긴 하지만, 어떻게든 그 잔치를 바꿀 여지도 충분히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다시 한 번 이야기 하지만, 이 상은 목적과 한계가 명확한 부분이 있고, 그에 대한 불만이 팽배합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투표 그까짓거 해봐야’ 같은 자조도 있는 건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뭐, 사실 ‘해본들’ 이면 어떻습니까. 적당히 기존 시상과 다른 기조의 후보작들이 나왔다면, 그저 ‘지들끼리 지지고 볶든’ 같은 이야길 하기 보단 그 판을 바꾸기 위한 작은 시도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2020 대한민국 게임 대상 후보작에 대한 온라인 투표는 2020. 11. 02.(월) 부터 11.09(월) 17:00 까지 진행됩니다(링크). 투표에 참여하셔서 대한민국 게임대상의 무거운 엉덩이를 같이 걷어차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P.S. 이 글이 특정 게임 투표 독려로 보이신다면 그건 그냥 기분 탓일 겁니다. (…)

다키스트 던전 Darkest Dungeon

  • 개발: Red Hook
  • 리뷰 플랫폼: PC (Steam 발매판)
  • 발매년도: 2016년
  • 장르: 롤플레잉, 전략

워낙 게임을 조심스럽게 플레이 하는 경향이 있는데다, 이 작품 자체가 매우 조심스러운 플레이를 강제하는 디자인(낙장불입)이다 보니 게임 플레이가 매우 늘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도 거의 1년만에 ‘이번에는 엔딩을 보겠어’ 라는 마음 가짐으로 플레이 버튼을 눌렀는데…

…게임을 켠 후 고작 두 턴(게임 상 시간으로 2주)만에 약 90턴 동안 키워왔던 메인 공략대와 서브 공략대가 주사위 놀음에 녹아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게임 내 모험가들 처럼 정신이 붕괴해서 미쳐버리는 사태까진 오지 않았던 건, ‘아하하, 뭐 이건 그저 (망할 운빨) 게임이니깐. 그냥 치트 쓰자’ 라고 빠르게 결정한 덕분이리라. 아니 잠깐. 이건 이것 나름대로 뭔가 사악한 거대악에 굴복한 것 같은 기분인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