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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제 : マネキドリは謡う(Decoy)
  • 각본 : 후지사키 준이치(藤咲淳一)
  • 그림콘티·연출 : 나카무라 류우타로우(中村隆太郞)
  • 작화감독 : 스가 시게유키(須加重之)
  • 메카닉 작화감독 : 카와하라 토모히로(川原智弘)

“이걸로 나도 ‘웃는 남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는군”

나나오 A

대중이 진실에 접근 하는 경우는 얼마나 되는가? 언론이 대중에게 진실을 전달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되는가? 이른바 언론인이라는 존재가 구체적으로 명확하지 않았던 고대에는 어떠한 사회적인 사건이나 현상을 전달하는 자들은 주로 음유시인이 그 역할을 담당했다. 그들은 예술가이며 동시에 리포터였다. 하지만,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진실이라 하지 않는 것 처럼, 그들의 이야기는 신뢰도 면에 있어서는 그다지 믿을만한 것은 못 되었다-물론 트로이의 존재는 사실이지만.

근대를 지나, 대중 매체가 발달하면서, 사건과 그것을 전달하는 매개자-즉, 언론이란 존재가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시대의 음유시인들은 이야기꺼리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아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하고, 대중들은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언론은 대중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대중 정치, 산업 사회, 그리고 매스 미디어가 병합하기 시작하면서 순조로웠던 출발은 점차 삐끄덕거리기 시작한다. 언론 자체도 자본이라는 괴물에게 잠식당하기 시작하면서 언론은 점차 ‘이야기의 제작자’에서 단순한 ‘이야기의 전달자’로 변질되어간다. 진실을 밝히려는 시도는 종종 금전적인 문제로 무산되어지고, 대신 뉴스 메이커가 전달하는 보도 자료에 의존하는 성향을 보인다. 이런 시스템의 문제점은 두말 할 것 없이, 보도자료의 진실 여부의 검증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진실을 왜곡하기 쉽다는 점에 있다.

오랫동안 쌓아놓은 대중의 신뢰를 바탕으로, 언론은 진실을 쉽게 호도 하는 창구로 이용되어져 왔으며 이런 일은 여전히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언론도 모르게 이뤄지는 경우와 알고도 그러는 경우로 분류 할 수도 있겠다). 스마일 사건의 진실, 경찰청장의 암살 예고, 그에 따른 음모의 중심에 언론은 존재하지 못한다. 다만 사건을 부풀리고 과장시켜 센세이셔널에만 집중할 따름이다. 이런면에 있어서 그들은 호메로스와 별 반 다를바가 없는것이다-차라리 호메로스는 문학적인 업적이라도 있긴 하지…

현실에서든 작품에서든 언론인의 제대로 된 역할 확립은 요원하기만 하다. 오죽하면 9과 대원들에게 휘둘리는 수준 정도가 이 작품에서의 언론의 역할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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