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S 십자군 이야기(7) – 에필로그

역사 연표

  • 1218년: 제 5차 십자군의 이집트 침공. 아이유브 왕조의 알 카밀에 의하여 격퇴 당한다. 칭기스 칸이 호라즘 제국을 침공하여 멸망시킨다.
  • 1227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 로마 카톨릭 교황에게 파문을 당한다.
  • 1229년: 프리드리히 2세가 제 6차 십자군을 이끌고 팔레스타인으로 진격. 알 카밀과 자파 조약을 맺는다.
  • 1248년: 프랑스 왕국의 성왕 루이에 의한 제 7차 십자군이 아이유브 왕조에 의하여 격퇴 당한다. 하지만 아이유브 왕조는 맘루크에 의하여 체제가 전복당한다.
  • 1258년: 몽골 제국의 훌레구 칸, 바그다드 정복. 완전히 파괴한다.
  • 1260년: 아인 잘루트 전투, 맘루크 조가 몽골 군에 대항하여 승리를 거둔다.
  • 1289년: 트리폴리 백작령 멸망.
  • 1291년: 아크레의 함락. 팔레스타인/시리아 내의 십자군 국가가 완전히 사라진다.

믿음과 현실

제 4차 십자군이 본연의 목적이었던 예루살렘의 회복은 고사하고 비잔틴 제국의 멸망(라틴제국 몰락 후 다시 제국이 재건되기는 하였다)을 불러온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목적성을 상실한 제 4차 십자군을 대신하여 1218 년 제 5차 십자군이 이집트를 침공하지만, 십자군은 아이유브 왕조의 알 카밀(Al-Kamil:  살라딘의 동생인 알 아딜의 아들)에 의해 격퇴 당하고 만다.

프리드리히 2세

이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프리드리히 2세(Frederick II)에 의하여 제 6차 십자군이 출정하게 된다. 하지만 로마 카톨릭 교회와의 정치적인 힘겨루기로 인하여 교황에게 파문을 당한 프리드리히 2세는 종교적인 믿음에 의해서가 아닌, 로마에 대한 정치적 우위를 점하기 위하여 십자군을 일으켰다. 프리드리히 2세와 유대가 있었던 알 카밀은 아이유브 왕조의 승계 전쟁을 해결하고자,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완충지대를 필요로 했고, 때문에 1229년에 프리드리히 2세와 알 카밀 간의 조약이 성립하게 된다. 이로 인하여 예루살렘은 다시 로마 카톨릭의 영향권에 들게 되었지만, 1244년 예루살렘은 다시 이슬람의 손에 들어간다.

1244년의 예루살렘 공격을 빌미로 프랑스 왕국의 성왕 루이(Louis IX)가 제 7차 십자군 원정에 나서고, 이집트의 난공불락 요새인 다미에타를 정복하는데 성공하지만, 맘루크(노예 무관)를 중심으로 아이유브 왕조는 루이를 격퇴하는데 성공한다. 이러한 성공은 아이유브 왕조의 정치적 지각 변동을 가져왔는데, 루이가 물러나게 되자, 맘루크들이 허약한 아이유브 왕조의 계승자들을 상대로 쿠테타를 일으켜 맘루크 조를 세운 것이었다.

새로운 위협

칭기스 칸

몽골 제국의 초대 칸인 칭기즈 칸(Genghis Khan)은 1206년 몽골을 통일하고 점차 그 세력을 확대해나가기 시작하였다. 중국을 정벌한 몽골은, 그 세력을 점차 서쪽으로 확대해나가기 시작했다. 페르시아(지금의 이란)지역을 중심으로 한 이슬람 국가인 호라즘 제국을 섬멸하였고, 이는 시리아의 이슬람 국가들과 십자군 국가들에겐 커다란 위험으로 받아들여졌다.

1227년 칭기즈 칸이 사망하고, 그의 후계자 중 하나인 훌레구(Hulagu Khan)가 페르시아를 거점으로 자신의 통치 기반을 다지기 시작하였다. 문무에 뛰어났던 그는 페르시아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시리아, 그리고 이집트 까지 제국(몽골 제국)의 통치영역에 넣고자 하는 야심이 있었다. 그는 바그다드를 불살라버렸고,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를 처형하였으며, 알레포와 다마스커스 역시 그의 손에 넘어갔다. 1260년에 이르러서 맘루크 조는 몽골에 대한 반격을 시도 할 수 있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후계 문제로 인하여 몽골 제국이 소란해지자, 훌레구가 자신의 주력 병력을 이끌고 제국으로 귀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1265년 훌레구가 사망하고, 한숨 돌린 맘루크 조는 십자군 국가들에 대한 정복에 나서게 된다. 1268년 안티오키아 공작령이 멸망하게 되자, 성왕 루이는 제 8차 십자군 원정을 시도하지만 실패로 돌아간다. 이후 1289년 트리폴리 백작령의 멸망, 그리고 2년 뒤인 1291년 5월 18일 마지막 십자군 도시인 아크레가 점령 당하고, 5월 28일 시리아에 남아있던 성전 기사단의 마지막 성체가 함락되면서 2세기 가까이 지속된 십자군의 역사는 마무리 된다.

십자군 그 이후

맘루크 조는 1517년까지 유지된다. 1299년에 아나톨리아의 한 구석에 조용히 등장한 오스만 제국이 맘루크 조를 대신하여 이집트와 시리아, 아나톨리아의 패권을 장악하면서 대 제국을 만들어낸다. 오스만 제국은 1453년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였고, 이후 번성기를 구가하면서 자신의 영토를 베네치아 근처까지 확장시켰다. 이 확장세는 1571년 레판토 해전에서 로마 카톨릭 연합 함대에 괴멸적인 패배를 당하기 전까지 계속 유지 되었었다.

레판토 해전 (작자 미상)

십자군 국가, 그리고 이슬람 국가들에 위협적인 존재였던 몽골 제국은 그 빠른 확장 만큼이나 제국의 소멸 역시 빨랐다. 중국 대륙을 중심으로 세력을 유지하였던 원을 종주국으로 한 4국 연합 체계를 갖추었던 몽골 제국은 1368년 원이 명에 의하여 무너지면서 제국 역시 자연스럽게 소멸되어 버렸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십자군으로 말미암아, 가장 큰 이익을 본 것은 지중해의 무역 도시 국가-베네치아, 피사, 제노바 등이었다. 특히 제 4차 십자군을 통하여 지중해 무역의 패권을 장악하게 된 베네치아 공화국은 동서 교류를 활발하게 촉진시켜 중동, 아시아, 유럽의 경제력을 높이는데 일조하게 되며, 더불어 문화 교류(물론 대부분은 약탈에 의한 것이었지만)가 활발해짐에 따라서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지중해 중심의 경제는 점차 신대륙 중심의 경제로 옮겨가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베네치아 공화국 역시 점차 역사의 중심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Army and Strategy 십자군 이야기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