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

오래 전 정말 기대하며 개발 중이던 게임을 서비스 종료 한 적이 있었다.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동원했고 옳다 느끼거나, 좋다 생각하는 개발 프로세스를 유지 했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개발 초기에는 프로토타입 제작. 지속적으로 수정하며 게임의 재미를 검증하고, 이후에 해당 내용을 토대로 본 게임 기획서를 작성. 그리고 시스템을 검토하며, 큰 개발 일정을 마일스톤 단위로 자르고, 해야 할 일들을 이슈 트래커에 넣고, 일일 빌드 로 항상 게임을 하고, 내부 업데이트 내역도 작성하여 내부에서 온라인 게임처럼 유지하고 등등… 하지만 뭘 어떻게 하더라도 일단 흥행에 실패했다. 팀 내에서는 매일매일 자신들의 게임을 하며 미쳐 살았고, 누군가는 학교 복학을 미루고, 누군가는 또 무언가를 미루고 모두들 자신의 인생에 몇 년을 그 게임에 바쳤지만 결국 흥행에는 실패했다. 나는 개발 프로세스가 게임의 재미를 가져다 주지는 않지만 개발 프로세스가 주는 탄탄한 개발 시스템이 게임의 재미 요소를 만들어 내는데 발판이 된다고 지금도 확신한다. 하지만, 모든 방법을 썼음에도 그 게임은 흥행에 실패했다.

 외부의 평은 싸늘했다. 사실 아직도 싸늘하다. 모 위키에는

“망했다. 한마디로 정의가 되는 게임”

이라 써있기도 하다. 다행이 아직 게임을 못 잊는 사람들도 있다. 소수지만… 작년(2011년)에도 리뷰라고 글쓰는 사람 있었다. 내 관점과는 다르지만 다른 사람들이 본 망한 이유들도 쓰여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단 서비스가 종료 될 때 느꼈던 감정은 “어떻하지?” 였다. 게임 자체의 안타까움 같은 것 보다는 “어떤 부분이 개발 시 잘못 되었을까?”, “어떤게 잘못된 결정이고 어떤 것이 옳은 결정이지?”, “앞으론 어떤 식으로 일을 해야 할까?” 였다.

군대를 다녀 오면 군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당연하게도 현재 파이드 파이퍼스의 개발 프로세스도 사실 그 당시부터 쌓아왔던 개발 프로세스를 최소로 유지, 보완하는 형태로 가게 되었다. 사실 이런 일련의 작업들은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지속적인 수정/보완을 용이하게 한다.’ 이다. 남들이 보기엔 ‘얘들 뭐 하나?’ 싶을 정도로 그렇게 겉으론 동일해 보이는 게임을 몇 달째 계속 수정하고 있었다.

게임이 흥하면 모든 선택이 옳아 보인다. 점프가 없는 MMORPG는 실패하니까 점프를 넣자 라거나, 게임 이름은 외자 여야 성공하니까 외자로 짓자 등(실제로 업계에 흔히 도는 이야기 들이 였다).  반대로 망하면 사소한 모든 것을 다 부정한다. 그게 사실이건 아니건 그냥 보기 싫은 거다. 저기 청기와에 사는 누구 처럼.

지금의 프로젝트도 그냥 보기 싫어서 피하고 있는 곳이 있었다. 게임의 핵심 시스템 중 하나인데, 최초 프로토타이핑에선 그곳은 블랙박스처럼 입력과 출력만 짜 놓고 나머지 부분부터 구성한 뒤, “해적왕이 될꺼야!” 라고 외치는 루피처럼 시스템을 구현해 보지도 않은채 “분명 재미 있을 꺼야!” 라는 믿음을 갖고 이야기했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은 결국 미완인 상태로 3번을 갈아 엎었고 수 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애를 먹이고 있다. 그냥 재미없다는 걸 인정하기 싫었고(동료나 나나 상처 받을까봐), 시간 낭비한 것을 스스로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게다가 팀원들이 지처 가는걸 보니 새로 다시 하자고 하긴 좀 그랬거든.

결국 용기를 내서 다시 새로운 시스템을 디자인 하고 있다. 굳이 그저 그런걸 내기 위해서 인생을 사용하고 싶진 않았다. 1년 가까이(이 게임 만으로는 6개월 가량) 작업을 했고, 10년 개발 인생의 10% 가까이 쏟으면서 적당히 타협해서 내면 안된다 생각한다. 겨우 ‘대충 만든 게임’ 내려고 회사를 뛰쳐 나온 것도 아니고, 키워야 할 애가 둘이나 딸린 동료에게 같이 하자 했던게 아니 였으니까. 분명 게임이 성공하든 못하든 분명 일 년에도 몇 번씩, 팀원들끼리 둘러앉아 술안주 삼아 “어디가 잘못했을까”, “나는 어떤 잘못을 했나?” 하는 고해성사를 결국 하겠지만 고해성사의 양이라도 줄여 보고 싶다.

이런 지리하고 잡다한 글을 쓴 이유는 결국 같이 작업하시는 분들께 혹은 옆에서 우리가 개발 중인 게임을 보는 분들께 이런 이야길 드리고 싶어서 이다. 전투 시스템의 완료가 늦어지는 건 다 나 혹은 우리의 실수이다. 개발 기간은 조금 더 길어질 것 같다. 그 동안 도움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확실히 재미 있어 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보다는 더 재미있어 질 것이다. 그리고 파이드 파이퍼스는 초사이언 상태를 평소에도 유지하는 손오공처럼, 일년 가까이 게임 다지기를 계속 해왔다. 우린 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