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이 되다

인디 게임의 정의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가장 쉬운 분류법으로 60 달러(USD) 게임에 들지 못하는 게임은 인디 게임이다. 라고 생각한다. 1~30 명 내외의 소규모 인원으로 게임을 만드는 것. 대형 퍼블리셔(EA 나 Ubi 같은)에게 돈을 받지 않고 개발하는 것, 그런 것 말이다. 킥스타터같은 곳에서 펀딩받는 인디 게임이나, 스팀에 올라온 인디 게임들을 보면 ‘어떻게 이런게 인디지?’ 라는 생각이 들때도 있지만, 또 ‘그게 인디지 뭐’ 하게되는. 자우림도 있지만 눈뜨고 코베인도 있는 인디 씬 처럼(물론 자우림에 대해선 논란이 있을수도 있다) 그런 느슨한 끈으로 묶여있는, 그런게 인디 게임의 정의 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 한다면 요즘은 ‘국내 게임 개발자들 대다수가 인디 개발자인 시대’ 인 것 같다. 야구를 좋아하는 분이라던가, 일본에 상장 하여 큰 부자가 된 분 등, 업계를 휘어잡고 있는 분들이 큰 그림을 그린 이후, 큰 회사들은 변신 로봇마냥 이리저리 합체가 되었다. 그에 따라 많은 개발자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소속된 회사에서 나오게 되었다. 수 년전 온라인 게임 붐 때는 신규 프로젝트에 몇 십억 또는 몇 백억씩 투자를 해 줄 여력이 있던 시기지만 지금은 아니기에, 다들 스마트 폰 게임이나 소셜 게임쪽으로 창업을 하고 있는 추세고, 그들이 만드는 게임은 위에서 내가 이야기하는 인디게임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 처럼 보이진 않는다. 바야흐로 ‘대 인디 시대’ 혹은 ‘대 창업 시대’의 개막이다.

파이드 파이퍼스는 시작부터 인디 개발팀 이였다. 느슨하게 ‘게임을 만들고 스마트 폰으로 대충 내면 어떻게 수익을 낼 수 있지 않을까?’, ‘빡 새 같은거 나도 한 달이면 만드는데 그런거 만들면 부자 되는거 아냐?’ 같은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게임 프로토타이핑을 길게하고, 만들고 싶은 게임을 다듬고 싶을 때 까지 다듬는 것을 목표로 시작했다. 시작할 때는 팀 내에 그래픽 디자이너가 없어서, 웹상에서 리소스를 조달 해 개발했고, 팀 내부에 출퇴근하는 그래픽 디자이너가 없는 것을 감안하여 최대한 리소스를 적게 쓰는 게임을 선택 하고, 하나의 리소스를 여러곳에 중복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UI를 고안하였다(프로젝트 시작 후 13개월이 지나서야  ‘아미 앤 스트레테지: 십자군’은 100% 자체 리소스로 채워졌다).

아래는 우리가 이벤트 씬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짧은 컷 씬인데 인 게임의 여러부분에 붙여 넣어 게임의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분위기를 살리는데 사용 하고 있다.

사실 이런 이벤트 신은 어릴적 즐기던 게임들에서 영향을 받았다. 나는 아직도 영웅전설 3 에서 밤에 잠이 오지 않아 침대에서 뒤척이던 이벤트 신을 기억한다. 그저 걷는 모습을 좌우로 번갈아서 찍었을 뿐이지만 이 단순한 효과가지고도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게 하기엔 충분했다. 당시 게임들은 용량을 줄이고 작업량을 줄이기 위해서 그런 방법을 많이 사용했다. 혼란에 빠지면 4방향으로 캐릭터를 뱅글뱅글 돌리거나, 놀랄 경우 살짝 위로 올렸다가 내리거나 등. 세밀한 텍스쳐, 사실적인 애니메이션, 엄청난 모델링과는 거리가 멀었던 시절이라 지금에서 보면 ‘뭐 그런게 좋나?’ 싶겠지만 그 거리의 간극을 상상력이 체워주고 있었기 때문에 감정 이입이 되던 시절이였다.

그 시절 개발자들이 당면한 조건과 우리가 제약 조건이 비슷하기에 우리는 그들의 방법을 차용하기로 했다. 원래의 기획안은 이미지를 한장 띄우고 그 아래에 장문의 문장으로 서술하는 고전적인 방식이였는데, 무책임 하게도 위의 이벤트 신으로 만들자는 결정을 IGF China 2012 용 릴리즈 두 달 전에 결정해 버렸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모 되었지만 원안보다는 확실하게 게임의 분위기를 살릴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

기존의 십자군 역사 관련 글들을 보면 등장했던 카드 형태의 캐릭터, 전체 맵과 외교에서 사용하던 깃발과 문양 등 이미 게임의 다른 부분을 위해 만들어 놓은 물건을 최대한 사용했다. 프로토타입 때에는 ‘던전 앤 파이터’의 배경과 ‘사무라이 스피리츠’의 배경을 가져다 놓고, 그 위에 장수 얼굴을 올렸으며, 간단한 기본 대화가 전부였지만, 심볼과 깃발을 넣고. 그 깃발을 장수가 들고 다니도록 하고, 얼굴 표정을 적용하고, 몇 종류의 대화창을 추가한 후, 분노 점프와 같은 에니메이션을 추가 했다. 상대와 나와의 관계 점수나 종교 관계 등을 기준으로 상황마다 다른 대사가 나오도록 작성하였고, 랜덤으로 텍스트를 출력하거나, 군중 씬 등에서는 위치를 랜덤하게 적용하거나 하는 프로그래머 다운 노가다도 수행했다. 이팩트도 간단히 넣고, 효과음도 sfxr로 만들어서 넣었다.

(길게 이야기 했지만) 정리하자면, 계획없이 즉흥적으로 필요할 때마다 아무거나 만들어서 넣었다는 이야기이다.

누구나 자신이 만든 무언가를 남에게 보여주고 칭찬 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 아이들 보면 부모의 칭찬을 받기 위해 하는 행동처럼. 내 손으로 만든 것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박명수 옹 처럼 한글 철자도 자꾸 틀리는 마당에 소설같은건 무리고, 디자인을 보는 눈은 부족하며, 그렇다고 노래를 잘하거나 악기를 다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

하지만 (프로그래머로서) 이벤트 신 작업은 감당 할 수 있었다. 짧은 대사와 서술만 필요하기 때문에 글쓰는 능력은 상관 없었고(그나마도 기획자 감수를 거쳤다) 이미 디자인된 물건 들을 적용만 하면 되기에 디자인 센스도 필요 없고, 레트로한 물건! 이라고 정한 탓에 효과음도 직접 만들어 넣을 수 있을 만한 수준이면 충분했다. 자신감이 생긴 탓에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 생각보다 많은 신을 만들어 내었다. 이벤트 신을 작성하는 나는, 내용을 구상하고, 이미 있는 물건들을 적절히 배치해서 찍어내는 감독이 되었다.

프로그래머는 프로그램에 대한 제한을 긋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을 뿐 전적으로 해당 작업자가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이야기 하고 다녔고, 십 여년 간 그렇게 일을 해왔다. 그래도 나도 프로그래머 이전에 게임 개발자이기 때문에. 노트의 가장 뒷장부터 게임에 대한 생각을 채워 나간 기억이 있으니까. 시스템을 주도해서 만들고, 그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게 정말 행복했다. 확실히 개발에 대한 만족스러움이 있기에 어딜 가던 누구와 만나던, 요즘 일은 어떻냐? 라는 질문에 서슴없이 이렇게 대답을 한다.

“내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충실히 사는것 같다.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얼마 안되었지만 나의 개발 인생은 지금이 가장 충실하며, 행복하다. 여러분의 게임 개발도 항상 그러길 빈다. 🙂